창녕 화왕산 억새 여행

입력 2000-10-06 15:01:00

대구권에서 억새를 감상하려면 어디가 가장 좋을까? 은빛 억새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창녕 화왕산(火旺山)이 군계일학이다.

산 정상 5만4천여평의 너른 품에 흐드러지게 핀 억새는 가을 산을 온통 '갈색추억'으로 물들인다. 서걱서걱대는 억새숲 속으로 난 오솔길에 나란히 앉아 가을을 얘기하고 있는 연인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화왕산성까지 왕복 3시간

해질 무렵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이 붉은 빛으로 물들면 덩달아 불길에 휩싸이고마는 억새밭. 품안에 그득한 억새는 실바람이라도 스치면 밑둥부터 흰머리까지 서로의 몸을 붙잡고 흔들거리며,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온기를 머금은 손길로 얼굴을 간지른다.

창녕읍 소재지에 차량을 세워두고 자하곡매표소(하왕산 서쪽)나 옥천매표소(동쪽)를 통하여 억새군락지인 화왕산성까지는 왕복 3시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입장료 1천원을 내고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는 억새가 바람결에 휩쓸리며 아우성을 치는 장관이 이어진다. 가파르지 않아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길을 1시간~1시간30분쯤 따라가다 보면 억새군락지를 에워싸고 있는 화왕산성이 앞을 가로막는다.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억새꽃이 만발한 풍광이 눈에 가득 차 온다. 은빛 억새가 석양을 머금어 황금빛으로 바뀌는 순간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올해는 유난히도 억새가 좋다. 웃자란 억새가 서로 몸을 기대며 그 넓은 평지에 빼곡이 들어서 있다. 정월 대보름날(2월19일) 불을 놔 억새를 태웠기 때문에 새순이 많이 돋아났다.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는 3년마다 열리는데 '큰불의 뫼'라는 산이름 답게 억새를 태울 때면 불이 크게 일어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불기둥을 만든다.

◈억새 태우기 3년주기 장관

산성내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배바우와 산 정상인 인수봉(해발 757m)이 자리한다. 중간 평지에는 창녕조씨(昌寧曺氏) 태생지인 용지(龍池)가 있다.

산성을 앞두고는 너와집과 굴피집.움막 등으로 구성된 MBC드라마 '허준' 촬영세트(허준이 삼적사에서 대풍창환자를 돌보는 과정을 찍은 곳)가 하나의 볼거리로 등장한다.

7, 8일 화왕산 억새밭에서는 배바우산악회(055-533-2998)가 주최하는 '화왕산 갈대제'가 펼쳐진다. 올해로 29번째인 화왕산 갈대제는 국내 유일의 야간 산정(山頂) 축제로 첫날 오후7시30분 산신제를 시작으로 8시 통일기원 횃불행진과 9시 캠프파이어, 둘째날 화왕산에서 본 천체 사진전, 자연보호행사, 패러글라이딩 축하비행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혹자는 "왜 억새를 두고 갈대제를 여느냐"고 얘기를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본디 화왕산 정상에는 용지(龍池)를 중심으로 갈대가 무성했다. 첫 갈대제를 열었던 1971년만 해도 마찬가지 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억새의 위세에 꺾인 탓인지 갈대는 점차 사라지고 억새가 평원을 뒤덮었다. 이래서 축제를 주최하고 있는 배바우산악회는 명성만큼이나 유명해진 축제의 명칭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는 판단아래 '갈대제'로 유지키로 하고 매년 산 정상에 갈대를 심어나가고 있다.

◈30년전만해도 갈대무성

구마고속도로 창녕IC로 진입해 동쪽에 위치한 화왕산까지는 3.5km거리.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20~40분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된다. 부곡온천단지와 우포늪이 지척이다. 옥천쪽 길을 택하면 주변에 화왕산 송이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시간이 충분하다면(6~8시간) 자하곡매표소로 올라가 화왕산성을 거쳐 관룡산병풍바위→놋단고개→심명고개→영취산(고나리재)→보름고개→종암산→큰고개→부곡온천 코스를 잡는 것도 괜찮다. (문의:창녕군청 문화공보실 055-530-8221

●억새는 벼과에 속하는 다년초 식물. 줄기는 원주형이고 높이가 1.5m이상으로 장대(壯大)하며 망경(芒莖) 또는 망(芒)이라고도 한다. 잎은 끝으로 갈수록 뾰족하고 꽃은 황갈색 또는 자갈색(紫褐色)으로 9월에 핀다. 산과 들에 자생하며 줄기는 민간약재로 쓰기도 한다. 꽃이 피기 전의 속은 부드럽고 달착지근해 옛날 시골어린이들의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다.

黃載盛 기자 jsgold@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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