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두개가치 사이의 혼동

입력 2000-10-04 14:09:00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권력이 많다고 으시대고 싶어 한다. 또다른 이는 돈이 좀 있다고 해서 뽐내려 못견딘다. 누구는 대단한 자리를 차지했다고 스스로 취한다. 그렇다. 대단한 의지로 큰 성취를 이뤘음은 좋은 일이다. 어깨 처져 옆사람까지 애닯게 하는 것 보다야 낫지 않으랴.

하지만, 그는 지금 뭔가 혼동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그가 이룬 성취는 아직은 개인적인 것일 뿐이고, 그 역시 잘해야 '개인적 영웅'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 못하는 것이다. 남에게 자랑하는 것은 '사회적 행위'이다. 때문에 개인적 가치를 사회적인 것으로 승화 시키려면 반드시 또하나의 과정을 스스로 이행해야 한다. 그 자랑스럽다는 돈.자리.벼슬 등을 남 돕고 사회 위하는데 쓰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바로 '개인적 영웅'이 '사회적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자랑할 자격이 생기는 것은 그런 다음이다. 그런 반면 개인적으로는 아주 힘들고 미약하면서도 남을 돕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영웅이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영웅'이라 불려 마땅할 것이다.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

자신의 성취에 혼자 취하다가 기어코는 사회적으로 몰락하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적잖이 봐 왔다. 개인적 영웅들 중에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경우가 적잖은 것도 마찬가지. 두개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해 벌어진 비극이다.

대구 감영공원에라도 한번 가 보자. 지금같이 가을색이 서늘한 때, 혹은 이제 막 피어나는 봄날이라면 더욱 좋으리라. 그 널찍하고 푸른 잔디밭의 소슬 바람, 먼 남녘에서 불어 오는 봄기운… 어지간한 감성만 있어도 곧장 행복감에 젖어 들리라그 넓은 정원을 내가 누리니 수백억원 값어치의 그 공원이 바로 내 것인 셈. 거기 어우러진 봄 혹은 가을의 정취 또한 그만큼은 될 터.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나 없이 부자 아닌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 지금 내가 갖지 못한 겨우 몇백만원 혹은 몇천만원 때문에 불행해 한다.

개인으로서의 나, 사회인으로서의 나

엄청나게 갖고도, 모자라는 겨우 몇푼에 우울해지다니,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이랴. 저 너머 '보기 싫은 놈들' 때문에 늘 속 썩이다가 문득 내 주위에 정말 정겨운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음을 깨닫고는 놀랐다는 사람도 있었다.

의사 파업 사태가 지속된 뒤 신문사로 많은 독자들이 전화를 해왔었다. 또다른 어떤 직종이 미워 못살겠다고 흥분으로 부르르 떠는 의사, "그까짓 의약분업 안해 버리면 될 것 아니냐"고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 가족들… 이해가 가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도 두겹의 두개의 가치(인식) 사이를 제대로 뛰어넘지 못함으로써 분노에 휘둘리고 있는듯 보였다. 하나는 '지금 당장의 내 이익'은 보이는데, 더 멀리 자손의 이익은 보이지 않는 그것이다. 지금은 내가 의사이지만, 내 아들 내 손자는 약사가 될 수도 있고, 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할까? 내 아들 내 손자대는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당장의 내 불편을 어느 정도는 참아야 하지 않을지 왜 되생각해 보지 않는 것일까?

두개의 가치 인정을

'지금 이 자리의 나'에게만 유리한 '당시적 이익'이 있듯, 더 멀리 몇세대 앞날까지 득되는 '역사적 이익'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두개의 이익 관계에 눈 뜨려 하지 않는다.

또다른 하나는 '직종으로서의 의사'와 '개별자로서의 의사' 사이의 혼동이 아닌가 싶었다. 의사라는 '직종'이 우리 사회에 필수 불가결한 장치임에 이의를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의사는 보호되고 지원되며, 그의 생활 또한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모든 개별 의사들이 보호되고 존중돼야 한다"는 식의 주장으로 혼동돼서는 안되리라. 의사가 중요한 것은 '사회적 장치'로서인 것이고, 개별적 존재로서의 의사 개인의 문제는 또다른 주제일 뿐인 것이다.

비단 의사만 그러랴? 교사.검사.판사.의원.상인.운전기사.농부.기자… 모두 마찬가지일 터. 그런데도 두개의 서로 다른 가치들이 지금도 여전히 헷갈리고 있다. 그것들을 잘 분간할 때에만이 어떤 문제이든 해결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박종봉(특집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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