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차관 배경과 문제점

입력 2000-09-29 00:00:00

정부의 대북 식량차관 결정은 북한이 지난 8월말 2차장관급 회담에서 식량지원을 공식 요청한 점을 감안할 때 북측 요청을 받은지 한달도 안돼 결정된 사안이다. 이는 북한이 올해 가뭄과 태풍피해 등을 들어 전례없는 식량난을 호소하고 있고 국제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의 지속적인 식량지원 요청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는 일단 북한의 긴급지원 요청을 감안해 중국산 옥수수 2만t 가량을 다음달 5일까지 북한 남포항에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연내에 50만t 지원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 WFP의 외국산 옥수수 10만t도 북한의 사정을 감안해 가급적 연내에 인도한다는 방침이다.

식량차관형태로 공여되는 50만t은 연 이자율 1%로 10년 거치 30년 상환으로 결정됐으며 소요비용은 전액 남북협력기금에서 대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정부의 이같은 전격적인 식량차관 지원결정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27일부터 시작된 제주도 3차 장관급 회담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역시 이같은 지원결정이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식량차관 지원 결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우선 식량지원 결정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석연찮은 태도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6일 남북경협 실무접촉에서 체결된 식량차관 제공 합의서를 이틀이나 지난 28일 공개해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특히 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제주 장관급 회담 참석전 "이번 3차 회담에서는 식량차관 문제는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며 연막을 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당국자는 "정부 내부 절차와 여야 정치권에 대한 사전설명 때문에 뒤늦게 공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또 이번 식량차관 지원 결정이 단기간내 이뤄지면서 회담 관행과 관련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지난 8월말 2차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으로부터 식량지원 요청을 받은후 한달도 안돼 이를 결정함으로써 북측의 물자지원 요청이 쇄도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 정부는 지난 2차 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이 컴퓨터 지원을 간접 요청한후 이를 수용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 중이다.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간의 각종 회담이 북의 물자지원 여부를 우리측이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식량차관 재원인 남북협력기금이 국회동의없이 사용되는데 따른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야당측에서는 "국회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면서 정부의 일방적 대북지원을 문제삼으며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은 국회동의와 동일한 효력을 가진 예산.결산 심의를 거쳐 조성되고 식량배급과 사용현장도 확인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식량차관 지원 결정이 인도적 차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이같은 애매한 태도로 자칫 그 지원의미가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그래서 제기되고 있다.

서귀포.李相坤기자 lees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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