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구 가로수정책 바꿔야 한다

입력 2000-09-28 00:00:00

얼마전 태풍 사오마이가 우리 지역을 관통하면서 우민(愚民) 민주주의에 못이겨 얼버무린 가로수 정책의 문제점이 또 한 번 드러났다. 대구의 상징인 동대구로에 늘어선 히말라야시더 20여 그루가 넘어진 것이다.

수입종 히말라야 시더의 한국이름은 개잎갈나무다. 이름부터가 뭔가 미덥지 못한 냄새를 풍긴다. '개'란 '가(假)'에 준하는 언어. 따라서 히말라야 시더의 우리 이름은 '가짜 잎갈나무'인 셈이다. 뭔가 그 품성이나 질이 진(眞)에 반대되거나 신통찮음을 뜻한다.

이 나무는 본성이 천근성(淺根性)이고 뿌리의 성질이 질기지 못한데다 가분수적이기 때문에 태풍의 피해가 있는 고장에서는 함부로 심을 수종이 아니다. 그 옛날 동대구로에 이 나무를 가지런히 심어놓고 자랑하고 있을 때 대구를 방문한 일본 식물학자 한분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외지인들이 맞이하는 대구의 첫 인상으로 '가짜(假)'를 내세우고 있다. 또 마냥 진실해야 할 법원이며 방송국이 있고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는 예식장이 줄줄이 늘어선 중심도로를 '가짜' 나무로 치장하고 있는 꼴이다.

필자는 수십년전부터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 관계기관에 진언해 왔다. 3년전쯤인가 대구시도 마침내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수종을 교체하려고 했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여론조사 결과 40대60으로 보존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이다. 시당국은 할 수 없이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가지를 솎아내고 쇠파이프로 삼각대를 세워 나름대로 안전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임시방편적 대책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태풍 사오마이가 증명한 것이다.

가로수에 대한 우민적 인식은 우리의 현대사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히말라야 시더는 그 자태가 곧고 끝이 뾰족하니 단정하기 짝이 없어 심훈의 상록수가 인기있던 시절, 대표적 상록수로 국민적 사랑을 받아왔다. 보릿고개의 모면과 푸른 산을 갈구하던 민족정서와 일치했다. 군사정권이 이 점에 착안, 히말라야 시더를 가로수, 관공서, 학교, 군막사 등 전국 방방곡곡에 확산시켜 3대 가로수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나무의 본성을 연구하며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진(眞)이 가(假)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어둠과 질곡의 시대를 하루빨리 탈피하는 것이 또하나의 소망으로 자리잡았다.

어쩌면 나무도 인생과 같다. 속을 비운 대나무는 쓰러졌다가도 바람이 멎으면 툴툴 털고 일어나고, 단단히 뿌리를 박고 알뜰히 자란 참느릅나무는 끄떡없이 제 모습인데, 개잎갈나무와 버드나무 같은 것은 홀연 쓰러져 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전히 '가짜'의 위세에 눌려 가로수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제2, 3의 태풍이 불어닥칠 경우 또다시 쓰러진 가로수로 인한 교통정체와 인명.재산피해를 우려하게 될 것이다. 알고보면 천재지변이란 것도 인간들 스스로가 최소화 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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