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죄송하다"는 말만으론 안된다

입력 2000-09-23 14:24:00

공적자금 추가조성은 없다던 정부가 말을 바꾸어 4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조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또한번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진념 재경부장관이 회수자금 10조원을 포함해 50조원의 자금을 조달해 대우부실처리와 2차기업.금융구조조정에 투입키로했다는 발표내용은 우선 그 규모면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이미 경제위기이후 109조6천억원을 부실금융기관구조조정에 투입한 것을 감안하면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31%에 해당하는 1백49조원가량의 자금이 부실 기업.금융구조조정에 들어가게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부가 정책판단 잘못과 집행공적자금의 부실관리로 인해 이같이 엄청난 국민부담을 가져오게 됐고 국민들에대한 말바꾸기를 하면서도 단지 장관차원에서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한마디로 가볍게 넘어가려는 것이다. 물론 공적자금추가조성의 시급한 필요성은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고 그 길 밖에 선택이 없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사실 추가공적자금의 필요성은 대우사태, 현대유동성부족사태 등이 터졌을 때부터 시장에서 먼저 이 문제가 제기됐다. 야당도 벌써부터 추가조성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으나 당시 총선을 의식한 정부가 오히려 필요성을 부인했을 만큼 이미 정부쪽을 제외하고는 추가조성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던 것을 보면 새삼 필요성에대한 논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자금투입액중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금액이 최소 45조원에서 최고 60조원에 육박해 국민부담이 1인당 최고 130만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는 사실은 그냥 죄송하다는 말만으로 넘길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왜 회수불능인지 몰라도 그 자금이 회수됐다면 추가자금조성이 필요없을 것이다. 1차공적자금조성후 추가로 발생한 기업.금융부실 가운데는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빛은행부정대출, 워크아웃기업의 도덕적해이,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 등에서 드러난 바와같이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국민의 혈세로 돈잔치를 벌였던 것은 공적자금의 결정과 집행에 엄청난 회의를 갖게한다.

앞으로 정부.여당의 협의와 국회동의 절차를 거쳐 추가조성이 최종결정될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의 대(對)국민 공식 사과와 공적자금 투입 기관의 부실과 도덕적해이에 대한 법적 문책과 감독정부기관의 문책이 선행돼야할 것이다. 그같은 응분의 문책사실을 공개하지않고 또 공적 자금을 조성한다면 어느 국민이 동의할 것인가. 추가자금의 집행도 엄정.투명하도록 감시장치가 마련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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