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데스크-공기업을 갖고놀게 되면…

입력 2000-09-19 15:06:00

정치권의 외풍이 포철 유상부회장의 머리카락을 한바탕 휙하니 날리고 지나갔다. 아직은 일과성의 설(說)이지만 그게 자꾸 설왕설래하다보면 농담이 진담될 수도 있는 법.

공기업을 갖고놀게 대타(代打)로, 총선에서 낙마한 조세형 전 총재권한대행, 강봉균 전 재경, 박태영 전 산자, 이헌재 전 재경장관의 이름이 들먹여졌다. 이른바 낙하산부대. YS집권 꼭 1년만이던 94년초 봄, 무너진 '박태준 포철'을 다스릴 장수로서, 서석재.김명윤 의원 등 상도동 가신에다 이경식 전 부총리, 안병화 전 상공 같은 경제통들이 함께 거론되다 김만제씨로 낙점된 그때의 상황과 너무도 닮아있다.

인생유전(人生流轉)의 한켠엔 전거지복철(前車之覆轍)이란 옛말도 있다. 줄여서 전철(前轍), 앞서간 수레의 뒤집힌 바퀴자국은 뒷수레의 좋은 경계(後車之戒)가 된다는 말이다. 영어로는 휠마크(wheel-mark)로 표기되는 이 옛말씀이 일깨워주는 4년전의 교훈 한토막.

##포철은 권력의 장난감 아니다

96년 봄 15대총선, 포항북구 선거판은 옥중당선된 무소속 허화평씨와 당시 여당이 낙하산 공천한 윤해수씨(교수), 자민련 최종태씨 등이 맞붙은 격전지였다.

이 합동 유세장에 당시 김만제 회장과 김종진 사장 등 포철 본계열사 고위층들이 흰색골프모자를 쓰고 줄줄이 여당후보 박수부대로 나갔다가 타후보들의 소나기 같은 입방아에 찍히는 수모를 당했는데, 그 낯뜨거움을 무릅쓰고 여당후보 연설이 끝날때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에피소드다.

정주영씨나 이건희.김우중씨 같은 재벌총수가 일개 유세장에 박수부대로 나간적이 있을까? 하기좋은 말로 에피소드지 이 사건은 포철직원들의 수치스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낙하산 인사는 경영실패 초래

지금 현역의원으로서 당당히 선 김만제 의원을 탓하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정치가, 사회가 그땐 그랬었고 또 그의 뜻이 아니었음을 아는 때문이다. 다만 권력이 공기업을 가지고 놀게되면 그 기업(경제)이, 정치가 어떻게 되고, 국민이 어떻게 병들어가게 되는지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함이다.

마사회(馬事會) 운전기사 연봉이 최고 6천100만원이란 어제 신문기사를 우리국민들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알다시피 YS시절의 포철 5년은 그 성장에도 아랑곳없이 정치외압에 시달린 5년, 자산낭비와 비효율 경영의 5년, 그리고 포항시민.협력업체들을 눈치보기.줄서기시킨 5년으로 남아있다.

김 회장 4년과 그앞의 1년을 합친 5년의 포철인사는 직원들의 기억속에 '엿장수 인사'로 기록됐다. 포철 25년 역사에서 TJ를 지우는 작업은 '인사태풍'으로 나타날 밖에 없었다. 친TJ는 찬밥, 반TJ는 더운밥이었다.

여기다 잘못된 투자, 방만한 경영은 정권이 바뀌자 곧바로 사정(司正)의 칼바람에 휘둘렸다. 하와이 땅투자, 수천억을 쏟아붓고 사실상 가동 중단상태인 광양미니밀공장, 과잉중복투자로 현철파동의 빌미를 제공한 삼미특수강 인수 등은 그 대표적인 것. 92년이후 5년간의 '저지레'를 수습하는데 다시 5년 걸린다는 말이 나도는 이유도 이같은 인사.경영의 폐해의 결과일 터이다.

##경영은 경영자에게 맡겨라

다시 인생유전-정계에 복귀한 TJ는 유상부씨를 포철의 간판으로 내걸었고, 지금까지 그는 성공한 총수로 내외의 평가를 받는다. 김 전회장 잔여임기인 지난 2년동안 포철사상 최대의 순익을 올려 경영에 자신감이 붙었고 '철강본업 경영'을 내세우며 경영문제에 있어 정치권을 단절시킨 그 뚝심도 인정받고 있다.

정치적 부침을 뼈저리게 경험한 TJ가 유 회장을 내세웠을 때, 그 이유도 '포철은 포철인의 손에'라는 것이었다. 비록 '유상부 스타일'상 엔지니어 회장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야당의 DJ정권 퇴진요구가 과욕이듯이, 유 회장의 향후 임기3년 역시 보장해주는 것이 옳다. 또 낙하산 인사라니…가당치 않다. TJ가 다시 무너진 틈을 타 회장교체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포철 직원들도 요즘엔 "이젠 예전처럼 그냥 보진 않을 걸" 하는 반응들이다.

그러나 기실, 포철이 민영화 된다지만 권력의 칼은 여전히 숨겨져 있다. 독과점 업체(시장지배형 사업자)인 탓으로 공정거래위가 여전히 칼자루를 쥐고 있고, 또 국회인들 국감의 목줄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게 뻔하다.

이달 끝주, 포철은 국감이 예정돼 있다. 정치권 인사들이 포철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감사장에선 죽일듯 따지지만 밖에서는 숫제 애원조의 청탁의원이 한둘이 아니란게 직원들의 경험이다. 이번엔 어떤 것들이 거래품목에 오를지 포항시민 모두 함께 지켜보자.

姜健泰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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