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입논술

입력 2000-09-15 00:00:00

---쟁점 리뷰-정체성의 확립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이십 년이 걸렸다. 트로이 전쟁에서 십 년,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표류와 고난의 역정에 십 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아타카로 가야 하는 이유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쿠스가 있는 고향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디세우스는 죽었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며 아내에게 구혼하며 왕권을 노리는 구혼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여야 하는 정체성의 확인 때문이기도 했다.고향이나 집은 인간이 출발한 근원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고향이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뿌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단초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오디세우스의 방황과 고난, 그리고 귀환은 끝없는 고난을 헤치면서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소망을 함축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쉽게 찾아지지 않으면서, 찾았는가 싶으면 다시 상실되고마는 이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은 청소년기에 자신의 진정성을 찾기 위해 맞이하는 수많은 시련이나 고통의 양상과 닮아 있다.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길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이나 풍랑, 마녀 등은 그의 귀환을 방해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귀국을 가로막는 것은 고통뿐만이 아니다. 환락 역시 그의 꿈을 유예시키는 유혹이다. 안락한 삶에의 유혹은 오디세우스를 키르케의 섬과 칼립소의 섬에서 오랜 기간 머무르도록 만들었다. 키르케의 섬에서 오디세우스는 부하의 충정 어린 간언을 듣고 다시 귀국길에 오르고, 칼립소의 섬에서는 헤르메스 신의 도움으로 그 섬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고난을 극복하는 것도 힘들지만 안락함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와 고통스런 운명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키르케의 섬이나 칼립소의 섬을 떠난다. 이처럼 오디세우스가 안락한 삶에의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자신의 진정성을 찾고자하는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한 부하들을 다시 인간으로 바꾸어 주려고 하는 오디세우스의 노력은, 바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그의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학비평가 게오르그 루카치는 변신(變身)의 진정한 형벌은 몸이 돼지로 바뀐 것이 아니라, 몸은 돼지로 바뀌었으나 정신은 인간의 것으로 남아 자신이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망각을 쾌락으로 바꿔 즐기든가, 아니면 마법과 싸워 인간을 회복하는 길이다.

돼지로 바뀐 후, 그 삶에 만족하고 정신까지 돼지로 전락해 버린다면 고통은 없을 것이다. 그 쾌락의 힘에 삶을 맡겨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쾌락과 물질에 대한 탐욕 등과 같이 진정한 삶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될 때 인간의 진정성은 획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재물에 현혹된 부하들의 탐욕 때문에 오디세우스 일행 모두가 그들이 돌아가야 할 근원지로부터 더 멀리 이탈되어 버린 것에서 이와 같은 진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탐욕이나 쾌락에 대한 욕망은 결코 진정한 인간성을 찾아가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안락한 쾌락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과 싸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된다.현대 사회에서 쾌락적인 소비 문화는 인간의 정신까지 지배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쾌락을 욕망하고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공허함을 메우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돼지 같은 삶'은 인간을 식민지화시킬 뿐이다.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되어야 한다'를 되뇌었듯이 우리 역시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배부른 돼지로 전락시키는 것들을 과감히 벗어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투쟁할 때 오디세우스가 겪은 고난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인간의 취약함을 벗어나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찾기 위한 처절한 투쟁과 그 성취를 보여줌으로써 인생에서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의지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청소년 시기가 되어 자신이 한 인간임을 자각할 때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인생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등의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의문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얻으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가운데, 자각은 깊어지고 시야는 넓어져 삶과 죽음, 인간과 세계, 현실과 이상에 대한 깊고 올바른 생각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자기의 참모습을 깨닫고 자기 자신의 참다운 삶의 방향, 즉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55차문제 최우수작

공직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 이전부터 오늘날의 김대중 정권까지 그 어느 때에도 공직자의 부패는 늘 문제가 되어 왔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설 때의 화두는 모름지기 부패 척결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제 제대로 된 공직 사회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배신감으로 바뀌어 갔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러 후보들은 자기를 믿어 달라고 자기를 찍어 달라고 핏대를 세워 가며 외치고 또 외쳤다. 일반 시민들은 이번 국회의원 선거만이라도 제대로 해 보려는 의지로 시민단체들의 낙선 운동에 박수를 보냈다. 자기 이름이 올라온 후보들은 강경하게 반대 주장을 펼쳤다. ①전부 닭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꼴이었다.

공직자의 공무수행 원칙은 자율성, 일관성, 투명성이다. 공직자들이 이런 수행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런 수행 원칙 세 가지만이라도 잘 지키는 국회의원들이 많이 당선된다면 ②몇 년 국회 농사는 풍년이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쭉 걸어온 길을 보면 풍년이라는 말이 무심할 정도로 창피스럽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는 사람들이 부정·부패로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것이 ③어디 상상이나 할 법한 일인가? 현재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도 꼬박꼬박 내는 세금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내 보려고 재산을 조작했다고 한다. ④이게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할 짓인가? 또 화급을 요하는 약사법 개정 외에도 현대 사태, 국민 연금법 개정안 등을 처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날치기 국회라든지 폭력과 욕설로 정국 싸움이나 하고 있다.

대기업 세금감면의 주인공 김법명 전자민련 의원이 해외로 도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검찰은 왜 거물급 인사만 놓치느냐 라는 의문과 함께 혹시 눈감아 준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을 받아 왔다. 그런 의혹을 벗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사건들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에 곁눈질하는 식으로 정치권에 대해 눈치를 봐서도 안된다. 이제 검찰은 하나의 독립성과 체계성으로 일관해야 할 것이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공직자와 국민들의 사이에 과거의 낡은 ⑤줄은 폐기처분하고 튼튼한 새 줄로 교체해야 한다. 만약 그 얇은 줄을 계속 사용한다면 국민들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남북문제를 포함해 금융 구조조정, 제2경제 위기의 대처 등 결정해야 할 절박한 사항이 도처에 있다. 자칫 일을 그르칠 경우 엄청난 파행이 예상된다. 공직자라는 신분에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이제는 마음을 합쳐 국가적으로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이 준 우(대건고 2학년)

---55차문제 총평

이번 논술 문제는 읽기 자료에 나타난 공직자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밝혀 보고 바람직한 공직자의 윤리를 논술하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를 쓸 때에는 읽기 자료의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고 그 가운데 필요한 것을 골라 조목별로 따져서 밝혀 쓰면 된다. 논술은 따져서 밝혀 쓰는 것이다.

이번 논술에서는 대건고등학교 2학년 이준우 학생의 글을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학생의 글은 미흡한 것이 많으나 그래도 전체적으로 무난한 것 같아서 뽑았다. 먼저 문제를 정확히 읽지 않은 것 같다. 전체의 내용이 문제 요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문제에서 요구하는 대로 쓴 것은 아니다. ①의 경우는 속담을 썼는데 속담이나 격언, 고사성어 등은 문제에서 요구하지 않으면 가급적 쓰지 않는 것이 좋다. ②와 ⑤도 비유로 된 표현이다. 속담도 풍유법이므로 이 셋은 모두 비유를 쓴 셈이다. 비유는 복잡한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할 때가 아니면 논술문에서 원칙적으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논술은 구체적으로 따져서 쓰는 것인데 이런 비유는 오히려 내용이 추상적으로 처리되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③과 ④는 의문형을 써서 설의법이 되었다. 강조의 구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설의법은 글의 내용을 감정적으로 흐르게 한다. 논술은 차분하게 따져서 쓰는 글이다. 감정적인 표현은 입시 논술과 같은 짧은 글에서 원칙적으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학생의 글은 전체적으로 구성이 잘되었으며 문장도 잘 쓴 편이다. 좋은 논술을 쓰는데 가장 좋은 선생은 열심히 써 보는 것이다. 지적을 당하며 배우게 된다. 학생도 몇 번 써 보면 좋은 논술을 쓸 것으로 기대된다.

---57차문제

---최근 남북관계에 대한 소감을 충분한 논거를 들어 논술하시오

문제:다음의 글은 최근 남북 관계의 급진전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모든 일은 조심하여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너무 소심한 행동은 기회를 놓쳐 버리고 상대방의 의심을 사는 일도 발생한다. 현재와 같은 남북 관계의 진전이 있기에는 미국 등 주변국의 상황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좋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족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남북이 신뢰만 쌓으면 주변국의 분위기를 우리 민족이 주도할 수도 있다.

최근의 남북 관계를 보면서 학생의 판단을 밝히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논거를 들어 논술하라.

대북 인식의 변화가 급격하다.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긴장 속으로 몰아 넣은 서해안 교전이 엊그제인데, 지금은 북한 도발 운운했다가는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8·15 이산가족 상봉의 감격은 북한에 대한 해묵은 적대감을 녹여 버렸고 '괴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한 사람들에게 광폭정치를 구사하는 호방한 성격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예정대로 내달 경의선 복구 공사가 진행되고 곧 이어 개성 관광 길이 열리게 되면 북한은 친근하고 다정스런 동반자로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남북 관계를 통일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기관차라고 할 때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는 지금 쾌속 열차를 바꿔탔다고 할 것이다. 열차 속에서 속도감을 못 느끼지만 차창 밖 풍경의 변화는 어지러울 지경이다. 1년 전 신문 스크랩을 한번 뒤져보자. 1999년 8월말 당시 북한 관련 뉴스의 최대 이슈는 미사일 문제였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고자 한·미·일이 공조해 평양당국을 회유하고 압박하는 내용의 기사가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지금 우리의 입장은 180도 바뀌어 북한을 옹호하며 미국의 '과민한 반응'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당시 서해 교전의 여파로 남북 군사 당국간의 공방전이 불꽃을 튀겼으며 '강철서신'의 저자 강영환씨의 구속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휴전선 지뢰 제거를 위한 남북 공동작전이 논의되고 있으며 비전향 장기수들이 환송연에서 '의사(義士)'로 불리고 있다. 시사에 둔감한 사람이라면 어리둥절할 것이 틀림없다.

이만한 속도도 갑갑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남북 통일은 한시 바삐 달성해야 할 민족적 염원이라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지나침이 없다. 지구촌에 남은 마지막 냉전의 고도(孤島) 한반도에서 분단을 극복하는 것은 촌각을 다투어 해결해야 할 대명제이다. 문제는 앞에 놓인 길이 탄탄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짐작컨대 이리저리 굽어져 있는 데다가 위험한 장애물도 적지 않다.

예상되는 장애물은 여러 가지이다. 남북관계의 쾌속주행이 달갑지 않은 주변국들의 견제와 제동이 그 중 하나다. 남북간의 잦은 인적·물적 교류 속에서 돌발 사고도 충분히 가능하다. 무엇보다 불안한 것은 작금의 변화가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방북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통일시기는 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이는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기 위한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 할 수 있지만 이산가족 상봉 등 일련의 이벤트성 행사가 그의 작품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한의 체제의 변화가 아닌 한 개인의 판단에 좌우된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되지 못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의 마음이 삐끗하면 남북 관계는 급전직하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김 위원장의 마음을 붙들어 놓기 위해서는 그의 비위를 맞추는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지나칠 경우 북한에 대한 불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남한의 보수적 인사들의 반발은 그것 보란 듯 터져나올 것이다. 최근 한·미 을지연습 축소 파문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같은 우려 때문에 일부에서는 속도조절론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통일에 대한 벅찬 기대감에 부푼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통일정책의 조종간을 쥔 당국자들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 안전운행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추이를 정확하게 내다보는 혜안과 장기적이고도 정교한 대응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 응모요령

글의 길이는 빈칸을 포함하여 1,500자 안팎(±150)이 되게 할 것.

제목을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원고마감 일자:9월 16일(토요일)

우편으로 응모할 경우 봉투 겉면에'제57차 학생 논술 응모'라고 반드시 쓸 것.

주소: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2가 71 매일신문 논술 담당자 앞 (우) 700-715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166 일신학원 논술 담당자 앞 (우) 700-412

학교와 학년, 집 전화번호를 밝힐 것.

당선작은 본지에 강평과 함께 게재·(상장과 부상은 학교로 우송함)※ 인터넷으로도 원고를 접수합니다.

매일신문-kjk@imaeil.com

일신학원-ilsin@ils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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