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정의지 태풍으로 포기

입력 2000-09-13 00:00:00

◈김비서 김포서 제주까지

김용순 노동당 비서 겸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대표단 8명을 태운 고려항공 806편이 1시간여의 비행 끝에 11일 오전 10시 4분경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 비서를 선두로 박재경 총정치국 부국장, 임동옥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대한항공 여직원이 김용순 비서에게 꽃다발을 선사했다. 뒤이어 남측 환영인사인 양영식 통일부 차관, 김보현 국가정보원 3차장, 김종환 국방부 정책보좌관 등이 차례로 북측 방문단과 악수했다. 김 비서는 남측 환영단에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공항 귀빈실에서 약 20분간 가진 환담 자리에서 김 비서는 "통일 열망을 안고 김포에 도착했다"며 "처음으로 내 나라, 내 민족의 땅인 김포 비행장을 밟게되는 우리의 맘은 뜨겁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방문 목적을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김 비서는 "오자마자 다 말하면 어떻게하냐"며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환담 후, 기자들이 양 차관과 악수하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하자 김 비서는"잡지에 자꾸 이런 것 나오는데 우리 2000년 들어서면서 이런거 하지 말자"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김용순(金容淳) 당비서는 11일 오후2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 에머럴드룸에서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별보좌역, 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송이전달식을 가졌다.

○…송이 전달식에서는 북측의 박재경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총국장이 김하중(金夏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300명분의 송이를 전달했다.

이날 송이 전달식에는 북측에서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박재경 부총국장 등이, 남측에서는 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과 한광옥(韓光玉) 청와대비서실장, 최학래 신문협회장, 박권상 방송협회장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박재경 부총국장은 송이전달식이 끝난 뒤 곧바로 김포공항으로 출발, 평양으로 귀환했다.

○…송이 전달을 위해 박재경 총정치국 부국장이 동행한 데 대해 정부 관계자는"송이 300상자를 따는데 군인들이 동원됐기 때문에 박 부국장이 온 것으로 보인다"며 "남측에 줄 선물인 송이를 북측 군인들이 땄다는 것도 남북화해시대에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촌평을 내놓기도 했다.

○…11일 오후 7시 30분께부터 시작된 박재규 통일부 장관 주최 만찬은 좌석배치에서 남북의 대표들이 서로 섞여앉아 화합을 과시했다.

임동원 대통령 특보 옆에는 임동옥 당중앙위 제1부부장이, 맞은편 김용순 비서옆에는 박재규 통일장관과 박지원 문화관광 장관이 앉았다.

이날 만찬에는 쉐라톤 워커힐 호텔이 준비한 중국식 요리가 나왔다. 동충하초와 불로장, 해삼송이 볶음, 바닷가재, 쌀국수, 야채볶음 등 9가지 요리가 준비됐다.○…만찬에 앞서 남측 초청인사들과 북측 대표 일행은 칵테일을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드니 올림픽 동시입장 등을 화제로 담소를 나눴다.

박 통일장관이 "평양에서 술을 많이 안했는데 오늘 마음껏 마십시다"고 분위기를 띄우자 김 비서는 "좋습니다"라고 화답.

박 장관이 또 "도착해서 피곤하지 않느냐"고 묻자 김 비서는 "다른 나라에 갈때는 피곤한데 제 나라, 제 땅에 오니 피곤도 없다"고 말했다.

○…12일 남한 방문 이틀째를 맞은 북한 김용순(金容淳) 비서 일행은 오전 8시 20분께 서울 신라호텔을 떠나 서울공항으로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20분 정도 늦게 로비에 모습을 나타낸 김 비서는 "잘 잤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신라호텔측에서 많은 배려를 해줘 잘 잤다"며 "감사 내용의 글을(방명록에) 올려 놓았다"고 말했다.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보와 남북 간의 현안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 비서는 "(지금) 많은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비서 일행의 한라산에 대한 관심은 각별했다.

제주 방문 첫 날인 12일 오후 한라산 '등반'도 북측 요구로 갑작스레 이뤄졌다.당초 1박2일의 빠듯한 일정 때문에 한라산 등반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4시30분께 북제주군 한림읍 분재예술원 방문을 마친 김용순 비서는 서귀포시 색달동 여미지 식물원을 관람하기 위해 대표단 1호 승용차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곧 차에서 내려 임동옥 당중앙위제1부부장, 권호웅 당중앙위 지도원을 불렀다.

분재예술원 정문 앞에서 가진 노상(路上)숙의 끝에 오후 4시 40분께 김 비서는 남측 관계자에게 "우리(북측) 성원들이 한라산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한다"며 한라산으로 가줄 것을 요청했다.

일정 변경에 따라 북측 대표단은 99번 국도를 통해 오후 5시25분께 한라산 1천128m고지에 위치한 영실(靈室)코스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태풍 '사오마이'의 영향으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김 비서는 비바람에도 아랑곳 않은 채 등산로 입구에 서서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특보와 잠시 환담하고, 또 사진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김 비서는 날씨관계로 한라산 정상까지의 등반이 결국 이뤄지지 못하자 "이 좋은 산을 모두 다 가꾸고 우리 인민들의 향유물로 만들어야 한다. 비록 올라가지는 못하지만…"이라며 다소 낙담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김 비서는 기자들이 "언제쯤 다시 한라산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이렇게 내왕하면 곧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며 "미래를 믿고 살아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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