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민심을 등지고서야

입력 2000-09-07 00:00:00

'아니땐 굴뚝엔 연기가 나지 않는법이다. 박 장관이 이 사건의 몸체가 분명하다. 은행구조조정 백번하는 것보다 이런 권력형비리를 파헤치는게 훨씬 효과적으로 국가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이걸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제2의 옷로비사건이 된다. 특검제로 전모를 밝혀야 한다. 송자 전 장관에겐 융단폭격을 퍼붓던 시민단체가 박 장관에겐 말이 없다. 시민단체인지 정부단체인지 의심스럽다. 뿐만 아니라 여당의 '선거개입비리'에도 꿀먹은 벙어리이다. 검찰도 외압수사는 않고 불법대출과정만 조사하고 있다. 이건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게 아니고 무엇인가. 북한에선 김정일의 총애를 받고 남한에선 DJ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박 장관의 '빽'은 더블빽이다. 박 장관을 북한에 대출했으면 좋겠다. 세계은행에 압력을 행사, 북한경제를 남한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박 장관님, DJ총애만 믿고/지저분한 짓 그만하세요/원망스럽게 보고 있는 국민이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3행시)'

◈멀어져가는 민심

한빛은행 불법대출 외압의혹을 받고 있는 박지원 장관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모아본 것이다. 의외로 강경하고 거의 단정적이다. 반론할 기회조차 없는 박 장관의 입장에선 억울하게 여겨질, 확증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들이다. 그러나 이게 '민심의 소재'인데 어찌하랴.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서 느낀 소회를 인터넷을 통해 마구 쏟아부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마침 6일 오후 열린 집권여당인 민주당의원총회에서 의미있는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이 민심의 소재를 뒷받침하고 있어 더욱 무게가 더 느껴진다. DJ의 도미(渡美)시절 박장관과 함께 보좌했던 김모 재선의원의 코멘트이기땜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는 "지금 우리가 대단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당이 그 심각성을 못느끼고 있는 것같다. 과거 야당때도 긍지를 잃어본적이 없는데 요즘처럼 도덕적 긍지가 떨어진 적이 없다.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에 대해 왜 당이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나? 정말로 정확하고 떳떳하다면 특검제라도 해야 한다. 적당히 소위원회나 열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은 현명해서 우리의 잔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추석때 지역에 내려가 보라,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온다. 우리가 피해(데미지)를 입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결국 더 큰 피해가 우리에게 온다. 오늘까지도 윤철상의원(선거비실사 개입발언 장본인)의 사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비공개 의총에서 한 얘기가 신문에 보도됐는데도 아무런 문책이 없는 게 무슨 집권당이냐? 최고위원들이 대통령하고 담판해서라도 총무에게 재량권을 줘야한다. 재량권이 있는 총무라야 그쪽(한나라당)에서도 대화하려고 할게 아니냐?"고 목청을 돋궜다. 네티즌의 여론과 일맥상통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날 회의벽두에 서영훈 대표는 당에 대한 지지가 낮은 건 김대중 대통령의 치적홍보를 국민에게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 홍보에 앞장서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여당 대표의 시국인식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직접 증거로 포착된 셈이다. 서영훈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유임된 후 인사차 전두환 전(前) 대통령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전 전대통령은 "내가 군에 있을때도 여.야는 싸움만 했고 내가 대통령때도 그랬다. 그렇지만 김영삼.김대중 대통령같이 평생 정치에 몸담은 분들은 정말 민주주의가 뭔가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5공때와 비교해봐도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똑같다"는 비아냥조의 얘기를 건넸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입 열 처지가 못되는 그가 이런 비판을 했을까. 지난 4일 김대중 대통령은 방송3사의 합동회견에서 여당 국회의석이 적어 개혁정책 수행에 애로가 많다는 투로 언급한바 있다.여당 의석수가 왜 적은지에 대한 근본문제는 간과해 버리고 그 결과만 탓하는 대통령이나 여당인기 하락이 대통령 치적에 대한 홍보부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여당대표나 정말 안타깝다 못해 한심하기 이를데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정이 이러니까 '외압 의혹'을 밝히라는 여론을 검찰도 들은척만척 딴짓거리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여론쯤이야 아예 깔아뭉개겠다는 투의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니 개혁정책에 국민공감대는 커녕 고비고비마다 마찰.저항뿐인 것이다. 국민을 현미경으로 들여봐도 모자랄 판국에 그 시선이 저쪽 노벨평화상 쪽으로만 향해 있다는 비판이 일고있는 것도 이런 탓이다. 겨우 2년반 가동된 정부여당의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않곤 이럴 수가 없다. 벌써 눈.귀가 멀고 썩고 있다는 징후가 아니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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