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 참관기

입력 2000-09-06 14:25:00

새벽부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경주톨게이트를 빠져 나가자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00'을 알리는 행사 안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저만치 신라인들이 이상향의 불국토를 세우고자 했던 남산, 비안개에 가려 희미한 윤곽만을 드러내 보이는 남산이 신비롭기만하다. 고도 경주, 아, 전혀 낯선 시간으로의 여행을 꿈꾸며 보문단지로 향했다.

12시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00의 주제는 '새 천년의 숨결'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마스코트인 화랑과 원화의 모습이 정겹기만하다. 관람객이 다소 한산하다. 아마 비 때문이리라.

먼저 문화이미지전을 표방한 새천년의 숨결관으로 빨려 들어 갔다. 거대 석상인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과 영국 스톤헨지, 천마총, 마야문명, 폼페이 유적, 팔만대장경, 자유의 여신상, 황룡사 9층 석탑 등이 재현되어 있다. 문화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한 눈에 보여주었다.

새천년의 숨결관을 나와 12시30분에 주제공연이 열리는 백결공연장으로 향했다. 이윤택 연출의 뮤지컬 '도솔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원형 극장에는 만원이었다. 월명과 니체, 두 인물이 만들어낸 동서양 정신의 접합점을 찾아내어 뮤지컬로 재구성해 낸 것이다. 두 시간 공연이었지만 수준높은 공연에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박수 소리를 뒤로 하고 첨단 영상매체가 숨쉬는 사이버영상관으로 들어 갔다. 안경을 끼고 앉아 보는 영상은 바로 눈앞까지 쫓아오는 가상현실이 실감났다. 남산, 월정교를 지나 귀정문을 지나 월성, 안압지, 황룡사, 첨성대로 이어지는 15분간의 첨단영상은 전혀 낯선 세계로의 초대였다. 전통과 문화, 하이테크가 조화롭게 숨쉬는 이 공간은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동방문화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실크로드나 해양으로, 유럽에서 반도의 서라벌까지 문화가 유입되는 경로를 한 눈에 보여준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에서 대여받은 유물들과 신라왕경도의 복원 등 수준높고 짜임새 있는 주제관이었다.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00의 나의 체험은 낯선 시간 속으로의 여행이었다.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첫회보다는 짜임새 있고 고심한 흔적이 두드러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란 한 시대의 충실한 반영이다. 현실의 토대 위에 한 시대의 문화는 꽃피며 그 열매는 후손들이 따먹는다. 우리는 진정 오늘의 어떤 문화를 만들어서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까?

행사장에는 우리 문화상품이 적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비단 경주 세계문화엑스포만의 문제는 아니다. 값싼 동남아산이나 중국산에 밀려 우리 문화상품들은 경쟁력을 잃었다.

이제 문화도 장사다. 우리 민족의 심성과 혼신의 힘으로 빚어낸 고급문화, 우리 것을 고스란히 팔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행사에서도 너무 많은 볼거리를 단숨에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앞섰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단일 주제로 보다 심도있고 격조높은 문화 공간, 축제의 공간을 창조해내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수용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적 감각을 지닌 경주 세계문화엑스포로 발돋움하기를 빈다.

〈 박진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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