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제는 원망하지 않아요.

입력 2000-08-18 12:01:00

"너무 많이 울어 나올 눈물도 없어요", "이제 어머님을 원망하자 않아요.." "..."

부모의 월북으로 험한 세파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자식들에게 23년만에 찾아온 어머니는 그저 손을 쥐고 할 말을 잊었다.

그동안 자식들이 짊어져야 했던 인고의 시간들, 그 괴로움의 나날들에 자신이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북측 방문단장인 류미영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은 16일 오후와 17일 낮 2차례에 걸쳐 마침내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차남 최인국씨와 막내딸 순애씨 등 자녀들을 만났다.

류 단장은 지난 77년 외무장관을 지낸 남편 최덕신씨와 미국으로 망명한 뒤 86년 4월 미국에서 함께 월북했다.

"처음 부모님의 미국 망명과 월북 사실을 알았을 때 믿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괴로웠지요"

막내딸 순애씨는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뒤 자신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고통을 눈물로 토해냈지만 이내 "이제는 원망하지 않아요"라며 한을 털어 버렸다.

'자식들을 버린' 부모님에 대한 미움 못지않게 그리움도 컸던 탓일까.

순애씨는 "어머님이 방문단장으로 내려오신다는 뉴스를 보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그러나 너무나 보고 싶어 그 다음날 한복을 준비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실 '과연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컸다"며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꼭 어머님을 만나뵙고 싶었다"며 입술까지 깨물었다.

순애씨는 어머님에 대해 "어머님은 유머가 많으신 분"이라면서"오늘도 오빠를보고 '살 좀 빼라'고 하시는 등 내내 가족적이고 화기애애했다"고 웃었다.

그리고는 "오늘은 어머님과 가족들이 모여 갈비탕과 갈비구이로 점심을 했다"면서 "북측 수행원이 '창덕궁에 가야 된다'고 해 만남이 끝나버렸다"고 아쉬워했다.'부모의 월북'이란 원죄 때문에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감시속에 잦은 이직과 이사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인국씨도 이번 만남에서 어머니와 '무언의 화해'를 했다.인국씨는 이날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너무 많이 울어 나올 눈물도 없어요"라며 류 단장을 꼭 껴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지나간 세월의 아픔을 깨끗이 털어버렸다.류 단장을 꼭 빼닮은 순애씨는 "지난 97년 병마에 시달리던 남편과 사별한 뒤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들 안규원(25.복지사)씨를 훌륭하게 길러낼 수 있었다"면서 "이제 마음의 상처도 치유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아들이 자라면서 성격이나 행동이 외할아버지를 닮아간다"면서 "아들이 며칠전 방청소를 하면서 외할아버지가 쓴 책을 발견했는데 '자랑스럽게 느꼈다'고 말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순애씨는 그러나 "한번 더 어머님을 뵙고 싶어 내일 마중 의사를 밝혔지만 어머님이 '다른 사람과의 형평성도 생각해야 한다'며 거절하셨다"면서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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