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출신 이산가족들의 50년 恨과 사연

입력 2000-08-16 12:22:00

#김천출신 비날론 개발자 미망인 황의분씨=북한 최고과학자로서 비날론 개발자인 고 이승기씨의 미망인이자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중 최고령자로 김천이 고향인 황의분씨(84)는 올케 강순악씨(85. 서울시 동작구)를 보자 "살아있으니 이렇게 다시 만나는군요"라며 강씨의 손을 꼭 잡았다.

강씨도 "50년이 지났는데도 그 곱던 얼굴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얼굴을 부볐다.

그러나 황씨는 조카 황보연(62. 경기도 안산시)씨 등 친정쪽 식구들을 보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참지 못했다.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황씨는 올케 강씨가 오빠의 사진을 꺼내놓고 "오빠가 돌아가셨다니 더 보고 싶다"며 울먹이자 조카들을 차례로 끌어안으면서 다시 눈물을 흘렸다.

황씨는 "시댁 식구들은 지난 91년 캐나다를 통해 평양을 방문해 대부분 만났다"면서 "이번에는 친정 식구들을 만나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영양출신 인민과학자 조주경씨=김일성대 수학과 교수로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고 있는 조주경씨(69. 영양군 영양면)는 어머니 신재순씨(89)를 보자 "오나니.." "오마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씨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50년만에 만난 아들을 붙잡고 통곡했다.

신씨는 외아들인 조씨가 두살 때 남편과 사별했으며 그후 조씨가 경북대사대부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로 진학할 때까지 자랑으로 삼았다고. 그러나 전쟁중에 조씨가 북한으로 가버리자 실의에 잠긴 신씨는 50여년 동안을 부산의 작은 사찰에서 생활했다. 신씨는 "부처님이 보살펴 우리 아들이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됐다"며 조씨를 부둥켜안고 놓을 줄을 몰랐으며 조씨는 "그동안 고생많으셨다"고 어머니를 위로했다.

#예천출신의 북한 도재린씨=북한 일행중 선두에서 상봉장에 들어온 도재린씨(65.예천군 용궁면)는 형 재익(79), 재하(69)씨와 누나 정순(71)씨가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오자 이들에게 와락 덤벼들어 포옹. 누나 정순씨가 "니가 참말로 살아 있었나, 얼굴 한번 보자"고 울음을 터트리는 사이 형제들은 부둥켜 안고 포옹을 풀지못했으며 30여분이 지난 뒤에야 다소 진정하는 모습이었다. 자리를 정돈한 뒤에는 둘째형 재하씨가 손수 마련한 금반지와 재린씨가 다녔던 동부국민학교 1회 동기생들이 마련한 손목시계를 선물로 재린씨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재린씨는 형 재하씨가 '용궁면 어린이집 원장' 명함을 내밀자 "어린이집이 뭐냐. 명함의 교회장로 직함을 보고도 "장로가 뭐냐"고 되묻기도 하는 등 남한 생활상에 대해 생소한 표정으로 궁금증을 보였다.

#가창출신 북한의 교수 양원렬씨=전쟁 당시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를 다녔던 양원렬씨(70,대구 달성군 가창면)씨는 형 진열씨(82) 얼굴이 다소 상기된 것을 보고 "나도 술만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체질이야"라고 말했다. 진열씨는 "그런걸 보니 영락없이 우리 식구구나"라고 화답했고 원렬씨가 "형수는..."이라고 묻자 "작년에 숨졌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가족 중에서 "교수를 하신다니 너무 기쁘다"고 말하자 원렬씨는 고개만 끄덕였다. 실제로 원렬씨는 월북 후 김일성 종합대학 수학과를 나와 현재는 김일성 주석의 동생 이름을 딴 김철주 사범대학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렬씨는 가족들과 만나는 동안 줄곧 "고향 가창의 강산은 어떻게 변했느냐"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표시했다.

#안동출신 이끝남씨 50년만에 남편 만나=23살 꽃다운 나이에 헤어진 남편을 50년만에 다시 만난 이끝남씨(이춘자.70. 경북 안동시 동부동)는 남편 이복연(73)씨가 어깨를 감싸안자 50년전으로 되돌아간듯 수줍어했다."안죽고 돌아오니까 반갑소..."

복연씨는 대답 대신 아내의 손을 잡았다. "전쟁끝나고 나서야 아들 둘을 데리고 굶어죽지 않았나 생각이 났다. 젊을 때는 혁명사업하느라 바빴는데 늙으니까 아이들이 어찌됐을까 걱정이 됐다" 4살, 1살배기였던 두 아들도 처음으로 아버지를 불러봤다. 생사를 알 수 없어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였다.복연씨는 자신은 북에 가서 재혼했지만 아내는 두 아들을 키우면서 50년동안 수절해 온 것에 대해 미안해 했다. 박한 말투와는 달리 아내 끝남씨는 남편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새색시처럼 안동포로 새 한복을 지어입고 백발이 다 된 머리까지 염색했다. 그녀는 안동포로 지은 저고리와 바지, 그리고 금반지를 남편에게 전하면서 두 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50년 동안의 한을 풀었다.

안동이 고향인 복연씨는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다가 전쟁이 나자 두 아들과 아내를 고향으로 보내고 자전거를 구해 따라가겠다고 했으나 그것이 끝이었다. 두 아들과 함께 안동까지 걸어간 600리길을 다시 오는데 50년이 걸린 것이다.

徐明秀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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