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다섯 번째의 광복절 새 아침이 밝았으나 백성의 얼굴에서는 별다른 감정의 기복을 찾아 볼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광복의 기쁨을 맛보며 즐긴 것이 과연 몇 날, 몇달이나 되었던가. 35년의 긴 세월을 인고와 오욕으로 보내다가 문득 해방을 맞이해서 목이 쉬도록 만세를 외치다가 정신을 수습해서 자신을 돌아다보니 허리가 잘린 불구의 몸이 되어 있다.
둘로 갈려진 이 불구가 피를 흘리며 싸우고 또 싸웠다. 명분도 실속도 없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전쟁으로 동족끼리 죽이고 또 죽이다가 급기야는 우리를 갈라놓았던 장본인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런 바보짓을 하고도 우리는 입만 열면 나를 잃었다는 이유로 조상을 탓하고 일본의 만행을 저주했다. 부끄러울 뿐이다.
우리는 한번도 떳떳하게 직접적으로 일본의 죄를 단죄하지도 못했고, 한번도 우리의 몸을 잘라버린 열강들의 그 음험함을 따지지도 못했다.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자신의 명운(命運)을 스스로 저들의 손에다 맡겨 버렸으니 어찌하겠는가. 일본인들은 여전히 저들의 아시아 침략은 해방전쟁이었다고 억지를 쓰고, 열강은 여전히 자국의 실속이라는 저울로 우리의 통일을 저울질 하고 있다.
남과 북에서 그럴만한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갈라진 두 몸을 하나로 붙여 통일으 이룩해야 한다고 떠들어왔지만 그것이 그들의 대내용(對內用)에 불과했을 뿐, 북쪽에서는 체제를 지키고, 남쪽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는 일이 민족의 통일보다 이들에게는 더 우선이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이들의 말을 들어 보라!남북 통일이 이룩되어 본래의 온전하고 튼튼한 몸을 찾는 날, 우리는 비로소 광복의 참 기쁨을 맛보고 누릴 수 있을 것인데, 과연 그런 날을 언제나 맞이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열강의 간섭이나 도움 없이 우리가 스스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에서 저들이 각기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들이 먼저 무너져야 한다.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북의 사정은 접어두고라도 우리의 사정도 결코 만만치 않다.
독립투사들이 목숨과 처자를 담보로 침입자들과 싸울때, 저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종노릇을 하면서 이득을 챙기거나 새로운 외래문명에 일찍 눈을 떠서 발복(發福)한 자들이 투사들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들은 이렇게 챙긴 부와 이렇게 해서 뜨여진 개안(開眼)에 힘입어 자식과 조카들을 일본으로 미국으로 떠나 보내 새로운 문물에 접하게 했다.
해방이 되어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하는데, 인재가 없으니 어찌 하겠는가. 이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서로 부르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밀어주면서 부와 권한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학벌, 군벌, 족벌, 정벌로 불리는 진기한 벌(閥)이 생겨났다. 여기에다 새로 일어난 재벌이 가세하여 결국은 이 땅에다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라는 가장 저급한 꽃을 피우고 살찌게 했다. 남과 북에서 각기 통일의 장애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는 이로써 극명해질 터이다.
남북의 정상이 오가고 몇몇 이산가족이 만난다고 해서 통일이 오는 것은 아니다. 통일의 길은 요원하고 요원하다. 3년에 걸친 혹독하고 모진 정치의 여독(餘毒)이 9년을 간다고 한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36년의 3곱은 108년이며 그렇다면 우리가 통일을 이룩하고 진정한 광복을 맛보려면 앞으로도 50여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광복의 아침에 왜 이런 불길한 생각이 들까. 불행히도 우리가 지금 통일과는 점점 멀어지는 길로 가고 있구나 하는 기우를 버리지 못해서이다.한양대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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