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가족 맞은 지역 이산가족 스케치-
# [대구 달성군]둘째 누나 만나는 최재구씨
"생전에 이렇게 좋은 날이 올줄 몰랐습니다"
6.25전 소식이 끊긴 둘째누나 최봉남(70)씨를 50여년만에 만난다는 설레임에 들뜬최재구(65.대구시 달성군 서재리)씨.
"아버지 어머니가 조금만 더 사셨어도 누나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 누나를 만나면곧바로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이 기쁜 소식을 보고드리고 싶습니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부모님과 2남2녀중 둘째딸로 화목한 가정을 꾸려왔던 최씨의 누나는 한국전쟁 직전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떠난뒤 소식이 끊겼다. 최씨는 "전쟁이 끊나고 가족들이 누나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끝내 연락이없어 죽은 줄로만 알았다"며 "누나가 이번에 방문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영영 못만날뻔 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최씨는 "이산가족의 만남과 함께 고향방문이 꼭 성사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8일 가족들과 함께 그동안 살았던 수성구 황금2동의 집에서 달성군 서재리로 이사를 한 최씨는 이삿짐을 풀면서도 누나 생각에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16일 봉남씨의 생존소식을 전해든 최씨의 형제자매들은 지금까지 봉남씨를 맞을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서울에 있는 최씨의 남동생 재영(63)씨와 큰누나 봉희(79)씨 가족들도 최씨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오는
15일 봉남씨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金炳九기자 kbg@imaeil.com
# [대구 태전동]동생 만나는 김치려씨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이 돌아온다니 꿈만 같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을이제야 풀어드리게 됐습니다"
지난 50년 동생 김치효(69)씨가 대학에 입학한 뒤 곧바로 소식이 끊겨 반세기를가슴앓이해온 김치려(74.대구시 북구 태전동)씨.
"전쟁이 끝난 뒤 하루하루 아들 소식만 기다리다 끝내 눈을 감은 아버지도 저승에서나마 기뻐하실 겁니다. 서울에서 동생을 만나고 나면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부모님 산소를 먼저 찾아갈 생각입니다"
7남매중 여섯째인 김치효씨는 지난 50년 4월 서울대 문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
학한뒤 맏형 김치원(85.경북 경산시)씨와 둘째형 김치려씨가 하숙집을 구해주고입학식에 참석한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6.25가 나고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대구역에 나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
렸고 형들은 서울대와 하숙집 주변, 친구집 등을 찾아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허사였다.
그러던 동생을 이제 며칠뒤면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씨는 "어릴때부터 동
생을 직접 데리고 다녀 성격이나 버릇까지 다 안다"며 "벌써 칠순이 다된 동생
을 만나야 한다니 한편으로 지난 세월이 어처구니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형제들뿐아니라 북쪽에 가족을 둔 많은 이산가족들도 하루빨리
상봉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힘써야 한다"며 다른 이산가족들의 아픔
을 감싸는 말도 잊지 않았다.
金炳九기자 kbg@imaeil.com
# [대구 신암동]삼촌 만나는 양성기씨
"금방이라도 대문을 열고 들어 올것 같은 그리움이 쌓인지 50여년, 기억 속에
잊혀져 가던 삼촌이 살아서 우리를 만나러 온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북한측이 통보한 이산가족 상봉명단에서 양원렬(69)씨를 확인한 장조카 양성기
씨(63.산부인과원장. 대구시 동구 신암1동)씨는 꿈만 같은 일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양원렬씨는 사대부속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50년 4월 서울대 문리
대 수학과에 입학했지만 두달 뒤 전쟁이 터지면서 가족들과 헤어졌다.
전쟁이 끝난 뒤 가족들은 인민군을 피해 무사히 피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
을 수소문했지만 결국 원렬씨를 찾지 못해 가족들 가슴속에 남은 전쟁의 상처는아물지 않은 채 반세기가 흘렀다.
"살아 생전에 동생 한번 만나기를 소원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꼭 찾아올 동생을 위해 맏형인 자신은 고향을 지켜야 한다며 대구시 달성군 가
창면을 떠나지 않다 2년전 세상을 등진 아버지 태렬씨를 그리며 성기씨는 눈시
울을 붉혔다.
북한의 동생이 100명의 상봉자 명단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누나 양용생(75.대구시 수성구 상동)씨도 회한의 가족사를 되새기며 동생이 살아 있다는
사실 앞에 눈물부터 보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호적정리도 하지 않고 살아온 50여년의 세월이 이제야 빛
을 보게 되었다며 창원, 강릉, 일산등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 모두 원렬씨 맞을 준비에 분주한 양씨 가족. 북한측이 200명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명단을 통보했을 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양씨 가족의 마음은 이미 통일
을 향해 가고 있었다. 李庚達기자 sarang@imaeil.com
# [대구 월성동]남동생 만나는 권옥남씨
"이제서야 50년 한을 풀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쁨니다"
남동생 권기준(66)씨가 오는 15일 이산가족상봉단으로 서울을 방문한다는 소식을접한 둘째 누나 권옥남(68.대구시 달서구 월성동)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 주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자란 기준씨는 안동농림고등학교 1학년인 지난 50년 여름, 학교에 간다고 나간 뒤 소식이 두절됐다.
이후 인민군이 학생들을 모두 학교에 모은 뒤 의용군으로 끌고 갔다는 말을 듣고제발 살아 있기만을 기원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과의 상봉을 한으로 안은 채 모두 세상을 떴다.
"살아서 만나지 못한 아들 죽어서라도 만나야 한다며 눈을 감은 아버지의 모습이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권기준씨의 큰 누나 권기순(71.서울시 중랑구 면목6동)씨는 부모님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줄 수 있게 된 것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시라도 빨리 동생을 만나려는 마음에 8일 오후 서울로 간 권옥남씨. "부모님
제사도 제대로 지내지 못하는 불효를 저질렀는데 이제야 짐을 덜 수 있게 되었
다"며 삼남매가 하루 빨리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했다.
李庚達기자 sarang@imaeil.com
# [청송] 한글학자 아버지 유열 만나는 유인자씨
「아버지, 아버지…정녕 꿈은 아니겠지요」
8일 북한측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에 북한 최고의 원로 한글학자인 아버지 유열
(82)씨가 포함됐다는 소식을 접한 딸 인자(60·여·부산시 연제구 연산4동)씨는유씨는 만나며 『아버지를 마음껏 불러보고 싶다』고 말했다.
인자씨는 『1.4후퇴시 나를 혼자남겨 두고 헤어진 부모님을 한때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럽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오는 15일이 50년보다 길게 늦겨진다는 인자씨는 『어릴적 헤어진 아버지의 모
습이 기억속에 가물 거리지만 아버지를 뵙는 순간 알아 볼 수 있을것 같다』며
『빨리 상봉해 그날이 밝았으며 좋겠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로 멀 준비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인자씨는 『우선 한복 한
벌과 금반지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아버지를 만나며 큰 절부터 올린 뒤 품
에 안겨 50년 동안 쌓인 그리움에 는물을 한없이 흘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유열씨는 북한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한글 학자로서 국어사전을 처
음으로 편찬한 것으로 알려졌다.부산· 李相沅기자.seaguil@imaeil.com.
청송·金敬燉기자.kdon@imaeil.com.
#[울진] 아버지 만나는 최중선씨
지난 4월 교통사고를 당해 아직도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최중선(52.울진군 울진읍.울진경찰서 근무)씨는 북측의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에 아버지 필순(77.당시
동국대생)가 포함돼 있다는 소식을 접한 8일 하루 내내 들뜬 모습이었다.
『경찰 공무원 신분때문에 북측이 아버님과 만남을 제외시키지나 않을까 가슴앓이를 해 왔었는데 만나뵐 수 있다니 정말로 꿈만 같습니다』
아직도 이 모든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최씨는 이번이 지나고 나면 언제 또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내 전영자(52)씨와 인탁(30).경탁(27) 두 아들,
누나 양옥(57)씨 내외 등많은 친인척들과 함께 상봉장소로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최씨는 6.25 당시 아버지 필순씨가 5살이던 누나 양옥씨와 한살이던 자신을 고향에 두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이산의 신세가 됐다.
최씨는『남겨진 유일한 아버지 사진은 50년전 사각모를 쓴 20대 청년의 모습』이라며 『이번엔 변하신 아버님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비디오 카메라를준비할 생각』이라고 했다.
울진.黃利珠기자 ijhwang@imaeil.com
#[합천] 동생 만나는 이호선씨
『죽기전에 동생얼굴 한번 보겠다는 소원이 이제 이뤄졌습니다』
헤어진지 54년만에 죽은줄 알았던 남동생 리돈(71)씨가 이번 상봉대열에 포함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호선(78·여·합천군 가야면 매화리)씨는 아픈 몸을 훌훌 털고 퇴원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씨는 신경통 등 노인성 질환으로 3개월 전부터 경북 고령군 영생병원에 입원한 상태.
찌든 가난(1종 생활보호대상자)에다 맏아들마저 정신지체장애자로 어렵게 살고
있는 이씨는 54년만에 만나게 될 동생소식에 시름을 떨쳐버리고 기쁨에 들떠있다.이씨는 『 동생 리돈이가 자신과는 배다른 남매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을 잊고
서울·대구의 이복동생들만 찾을까 걱정했으나 자신을 찾아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합천 鄭光孝기자 khjeong@imaeil.com
#[예천] 동생 만나는 도재익씨
『50년간 응어리진 한을 이제야 풀것 같습니다』
8일 오전11시 대한적십자로 부터 북한에 있는 동생 도재린(67)씨를 만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맏형 재익(78 예천군 용궁면 덕계리) 재하(70)형제는 『7일까지 상봉 소식이 없어 탈락 된 줄 알았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도씨는 서울에 있는 아들이 대한접십자에서 복사한 동생사진을 보니 희미하지만옛모습을 찾을수 있다며 동생을 만나면 25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동생을
애타게 그리워했다는 소식을 먼저 전하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도씨는 6.25당시 아버지가 면의원을 지내는 등 공무원 가족이라는 이유로 집에
있던 동생 재린(당시 16세)씨를 의용군으로 끌고 갔는데 얼마후 같이 끌려갔다
도망쳐온 사람들로 부터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만나게 된다니 감
개가 무량하다고 말했다.
동생에게 줄 금반지 10돈과 금목거리. 전자제품 등을 준비 해 놓고 있는 도씨
형제는 『동생이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다』며 동생과의
재회에 부푼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예천 權光男기자 kwonkn@imaeil.com
#[안동]형님 만나는 김창기씨
『이제는 50년간 응어리진 생이별의 한을 풀 수 있을것 같습니다.』 6.25전쟁때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님이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돼 상봉을 앞둔 김창
기(59. 안동시 송천동)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의 형 영기씨는 지난 48년 안동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 아현동의 종고모님 댁으로 있던중 6.25 난리통에 실종됐다. 김씨의
부친(79년 작고)은 전쟁이 끝난 직후 큰 아들을 찾기 위해 상경했으나 큰아들
이 머물던 친척집은 포화에 잿더미가 돼 흔적조차 없었다.
『부모님들은 형님이 그래도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기다렸으
나 20여년이 지나도 끝내 돌아오지 않자 기대를 접고 원혼이라도 달랜다며 거
의 매년 원혼 굿을 지냈고 그비용 때문에 가산이 흔들릴 정도 였습니다.』
『부모님의 가슴에 한이 된 게지요』
8일에는 영기(68)씨의 절친했던 중학동창생이자 고향 친구였던 권중동 전노동부장관이 김씨의 집을 찾아와 축하의 인사와 함께 어릴때 추억의 소회를 나눴다.
기쁨을 나누려는 친인척, 이웃의 전화와 발걸음이 줄이어 잔치집 같았다.
그러나 김씨는 걱정이다. 헤어질 당시 7살이던 자신을 형님이 알아 볼지 몰라서다.그래서 김씨는 형을 만나면 방학때 고향집에 내려와 반변천에서 함께 송사리를 잡고 멱을 감던 얘기로 기억을 떠올려볼 생각이다.
김씨는 『부모님들에게 형님이 초등학교에서 월반을해 2∼4살 많은 학생에 섞여 중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영특했다 얘기를 들었다』며 『아마 북한에서도 성공한인생을 살았을것으로 짐작돼 50년만의 상봉이지만 부담없이 맞을 수 있을것 같다』고 말했다. 안동·鄭敬久기자 jkgoo@imaeil.com
#[영주] 동생 만나는 권계희씨
생사조차 몰라 제사를 지내왔던 동생이 북에 살면서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접한 권계희(여·73 영주시 하망동 102)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50년전 고향인 영주 이산면에서 의용군으로 끌여 갔다는 소식만 듣고 생사를 확인못해 매년 동생 제사를 지내왔다는 권씨는 동생 중국(70)씨를 만나 그간 고생한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듣고싶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이산가족 만남의 길이 조금만 빨리 열렸으면 3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가한을 풀수 있었을텐데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막내동생 권춘례(59)씨와 함께 동생 중국씨의 몸 칫수를 다시 떠올리며 모시 바지와 저고리를 손수 만들고 있는 권씨는 동생에게 줄 선물로 금반지 등 패물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동생을 만난다는 기쁨에 몸과 마음이 떨려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며 50년만에 실향민들의 소원을 이뤄준 정부에 그저 고마울 뿐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영주·朴東植기자 parkds@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