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만나게 돼 꿈만 같아요

입력 2000-08-07 12:31:00

"조금만 더 오래 살아계셨으면 이 못난 자식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텐데... 어머니 산소를 찾아가 불효자식을 용서해달라고 빌겁니다"

51년 1.4후퇴때 홀어머니와 남,여동생을 두고 홀로 월남한 김각식(71.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씨. 여동생 김정숙(63)씨의 생존소식에 이어 자신이 방북명단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접한 김씨는 "50년동안 쌓인 주름살이 펴지는 것같다"며 환한 웃음을지었다.

'며칠후면 고향땅을 밟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가슴 설레는 김씨에게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초등학교 시절,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지켜본 김씨는 6.25로 인해 또다시 가족들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장남은 꼭 살아남아야 한다. 어려운 생활을 이겨내려면 서울에 있는 외삼촌을 찾아가 세공기술을 배워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에 두 동생을 두고 고향을떠날 수 밖에 없었다. 월남 뒤 지금의 아내 신무생(62)씨를 만나 2남1녀를 모두 출가시켰다.

김씨는 "이왕이면 남북한 당국이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을 허용해줬으면 하는게 욕심"이라고 말했다.

"동네 앞 남대천 개울에는 민물뱀장어가 많았지요. 여름이면 친구들과 함께 하루가멀다하고 뱀장어를 잡으러 다녔지요".김씨의 마음은 벌써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에가 있었다.

현재 중구 계산동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김씨는 벌써부터 북한방문 짐을 꾸리느라 바쁘다.

金炳九기자 kbg@imaeil.com

"언니를 만나게 되면 남편의 생사도 알 수 있겠지요"

지난 5일 8.15 이산가족방문단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적십자사의 연락을 받은강성덕(71.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할머니는 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남편생각에 눈물을 글썽였다.

남편과 시댁 식구를 찾기 위해 이산가족 신청을 했다가 결국 언니를 만나게 된 강할머니는 "죽기전에 만나리라고 생각도 못한 언니를 보게 되어 마치 꿈을 꾸는 듯한데 남편도 만났으면 하는 욕심이 가시지않네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 할머니는 언니 순덕(75)씨를 만나면 함께 거닐던 모란봉과 대동강변에 가서 50년간 가슴에 묻어 두었던 얘기를 마음껏 하고 싶다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하지만 "언니를 만나면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과 형부의 안부를 물을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막막하다"며 한숨 지었다.

이날 오후 동생 혜덕(67)씨와 아들 이명(51)씨 등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강할머니는 "이 사진을 보여주며 외아들 명씨와 당시 6살이던 막내 동생 명자씨가 벌써54살이라는 등의 가족 안부를 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 할머니는 "언니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준비해 선물하고 싶다"며 설레었다.

평양 출신으로 1.4후퇴 때 친정식구들과 함께 갓난 아들을 데리고 월남해 대구에정착한 강 할머니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옛날에 살던 평양 인흥리집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방북 탈락 가족 허탈한 표정

【예천】오는 15일 북한을 방문 하는줄 알고 동생과 조카들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 했는데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에서 제외 되었다는 『비보』를 접한 예천군내 7명의 이산가족들은 모두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있다.

예천읍 통명리 이봉래(여 66)씨는 죽은줄만 알고 제사까지 지내던 오빠 ( 이운용 68)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알았으니 언제가는 만날수 있겠지 하면 허탈해 했다. 북한에 조카(윤수옥 남.69)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윤권중(83.예천읍 백전 리)씨는 형님이 돌아가시면서 조카를 만나면 전해 달라는 유언을 전할려고 했는 데 방북 명단에서 제외 되었다며 내가 죽기전에 꼭 조카를 만나야 한다며 아쉬워 했다.

權 光 男기자 kwonkn@imaeil.com

[대구]"다음번엔 내 순서가 되겠지요..."

이산가족 한이순(72·대구시 중구 동인4가)씨는 최종 방북자명단에 들지 못했다는 소식에 아쉬움을 감추지못했다.

함경남도 함주 출신인 한씨는 1948년 남편 문준상(77)씨를 따라 월남했다가 가족 과 생이별하게 됐다.

한씨는 남동생 도전(63), 여동생 고분(65)씨의 생사에 대해선 미확인 통보를 받았 지만 시조카 문이섭(70)씨가 북쪽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하루 재회 의 꿈에 부풀어 있다.

방북탈락 소식에 가족들의 상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남편 문씨는 "집사람이라도 최종 명단에 들기를 바랐는데..."하며 섭섭 해 했다. 한씨는 그러나 "살아만 있으면 곧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다 음 기회를 기약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