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하는 교육살리기

입력 2000-08-04 00:00:00

2일 오후2시 대구 남산여고 운동장 한켠 종교부실. 10여명의 성극반 (聖劇班)여학생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흩어져 있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발성연습을 하는 학생, 대본을 들고 중얼거리며 왔다갔다 하는 학생, 구석에 둘러앉아 심각하게 의논하는 학생들.

맡은 몫은 다르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한 가지. 다음달 16일 열릴 '건전한 성가꾸기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한 연습이다.

지금까지 성이라면 왠지 말 꺼내기가 쑥스럽고, 이래저래 표현하는 일도 쉽지가 않은, 약간은 비밀스런 영역으로 치부돼왔다. 그러나 학생들은 별다른 거리낌이나 거부감 없이 연습을 하며 질문에도 응했다.

대회에 참가하는 작품 제목은 '울음소리'다. 성에 대해 무지한 수희와 어느 정도 지식이 있지만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은경, 원조교제도 마다않을 정도로 잘못된 성관념을 갖고 있는 J 등 3명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요즘 학생들의 대표적인 전형을 뽑아낸 것이다.

인물에 대한 느낌이나 상황 설정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솔직했다. 문제아 J역을 맡은 2학년 박선영양은 "배역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도발적이면서도 강한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박양은 실전감각(?)을 익히기 위해 채팅에 상당한 시간을 쏟은 결과 남자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됐다며 으쓱해 했다.

은경을 유혹하는 남자친구 역할을 맡은 2학년 양영학양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고 겪을 수 있는 인물과 사건들의 고민들"이라며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이 이같은 문제해결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데 시간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구석에 모여 머리를 맞댄 학생들은 스태프였다. 조명, 소품, 음향 등 막 뒤편에서 애를 쓰는 역할. 조명을 담당한 최미진양은 "연기요?, 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라며 손을 내저었다. 처음부터 조명을 하고 싶어 성극반에 들어왔고 너무나 재미있게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모두 이런 식이었다. 한결같이 흥에 넘쳐 있었고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연기자이건, 스태프건, 자기 역할에 만족하며 금쪽같은 방학시간을 학교에서 연습에 보내는데 대해 한점 불만도 보이지 않았다.

지도교사 조애림씨는 "대회 참가는 학생들이 먼저 제의했다"며 "당연히 목표도 수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내보이고 관객들이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공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흘리는 땀방울 속에는 교실붕괴도, 왕따도, 학교 안팎의 숱한 문제도 자연스레 녹아내리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학교에 나오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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