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어지럽죠? 이해하세요. 애들 키우는 집 다 그렇잖아요" 필리핀 출신 한국인 아이다(35)는 꼬꼬마 텔레토비 인형과 소리나는 곰돌이 인형을 방 한쪽 구석으로 급하게 치우며 배시시 웃었다. 그런 모습이 이웃의 주부처럼 낯익다.
지난 일요일,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의 한 구불구불한 골목을 비집고 찾아간 아이다의 집. 남편 김위진 씨와 아이다의 시어머니, 두 살 난 딸 영희는 좁은 방에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아이다는 1997년 11월 29일 결혼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나 1년간 연애 끝에 한국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던 것.
한국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무척 행복하다는 아이다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 시어머니 자랑, 남편 자랑, 아기 자랑에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야기까지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영어를 썼을 뿐 잔소리가 많은 것을 보면 틀림없는 한국형 주부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내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늘 참는다는 남편 김위진씨는 자신이 공처가라는 사실만은 애써 부인했다.
아이다는 일요일마다 필리핀인들이 모이는 대구 중구의 가톨릭 근로자회관에 나간다. 가정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국제 전화용 카드 판매 부업에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벌어들이는 수입은 기껏해야 월 10여만원이지만 고향소식도 듣고 반찬값도 벌어 일석이조.
부부간에 제일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다는 주저 없이 '해피니스'라고 말했다. 올해 초 새로 발급 받았다는 그녀의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엔 한글로 '아이다 피비사그리' 라고 씌어 있었다.
曺斗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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