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인간배아 복제

입력 2000-07-31 14:23:00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는 지옥의 왕 오실리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죽은 사람의 내장을 정의의 저울로 재어 선악을 가린다. 그 다음 응분의 벌을 가하고, 새 장기로 갈아끼워 이승으로 내보낸다. 중국 양자강 연안에 귀신 세계를 재현해놓은 '귀부'에도 장기창고가 있다. 이승에서 지은 죄값을 치른 다음 인도되는 이 창고에서 죽은 사람들은 장기를 신품으로 갈아끼운 뒤 환생한다는 이야기가 뒷받침되고 있다. 10여년 전 인간 복제 문제가 처음 대두됐을 때만 해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여겨졌다. 복제 양 '돌리'와 함께 그 자리에 공포와 두려움이 놓였다. 곧 이어 인간 복제 실험이 성공하면서 사정은 아주 달라졌다. 지옥에나 나오는 오장육부 창고가 현실세계에 실현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복제 배양된 장기를 갈아끼워 살아날 수 있는 시대가 우리 앞에 당도했다. 영국 정부가 30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과학자들에게 인간 배아 복제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혀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인간의 장기를 다른 동물에서 키우는 배아 복제가 초기에는 연구 목적에만 허용될 것이라 한다. 낙태된 태아에서 추출한 세포는 사용할 수 없으며, 인간 전체의 복제는 금지되리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문제가 없지 않아 보인다. 복제 양 '돌리'를 만들어낸 바 있는 에든버러 로슬린연구소 관계자는 '인간적 요소가 없는 세포 덩어리에 불과한 시점인 14일 이상을 넘겨서는 진행되지 못하도록 제한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진행되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사지 전체를 연구실에서 성장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된다면 '걸리버 여행기'의 가공할 노인국 추태가 실현될 것은 뻔하다. 더구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반인륜.반사회적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기술을 악용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창조 질서를 깨뜨리는 '신성 모독적 행위'라고 반대하는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휴머니즘의 윤리나 그 파국을 걱정하는 사회적 합리론의 이성으로 따져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질병 없는 낙원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창고가 있는 또 다른 지옥이 될까 두렵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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