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화려했던 문화유적인 앙코르와트와 3백만 명의 동족을 학살했던 킬링필드라는 비극이 교차하는 캄보디아. 전쟁과 죽음, 혼돈, 가난이란 고정관념 속에 자리잡은 나라.
올해는 캄보디아가 공산화되면서 살육의 비극이 시작된지 25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더 이상 살육의 땅도 비극의 땅도 아니다. 경제재건을 위해 의욕적으로 해외투자를 끌어들이고 가난을 벗기위해 교육에 집중 투자한다. 캄보디아의 어제와 오늘을 현지탐방해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프놈펜의 대외관문인 포첸통국제공항에 내리자 공항청사 확장공사 현장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마치 내전의 상처를 딛고 이제 막 이륙준비를 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현실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공항을 나와 캄보디아에 첫발을 들여놓으면 낯설지않은 풍경이 반긴다. LG전자의 대형 입간판에서부터 거리를 달리는 한 국산중고자동차와 오토바이들.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12㎞떨어진 초응엑(일명 킬링필드)현장을 찾아가는 길이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평온했다. 시민들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시 외곽으로 빠져나오자 눈에 익은 녹색 청소차도 거리를 누빈다. 옆에는 '중랑구', 앞쪽엔 '공무수행'이란 마크까지 선명하다.
킬링필드 입구에서부터 내전의 후유증을 체험할 수 있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몰려와 "1달러"를 외쳐댄다. 학용품이 필요한 듯 말없이 볼펜을 가르키는 아이도 있었다. 앙코르 와트 등 관광지에서의 아이들은 그림엽서나 관광책자를 건네며 1달러를 호소하지만 여기선 그냥 손을 내민다. 표를 받고있는 어른들도 못본 척 무관심하다.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으며 그 끝은 어디일까? 17개층에 걸쳐 해골이 보존돼있는 희생자 위령탑앞에 서면 치가 떨리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안경을 꼈다고, 손바닥에 굳은 살이 없다고, 금니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 크메르 루주군은 이 현장에 100여개 이상의 구덩이를 파고 2만명 정도의 시신을 매장했다. 지금은 발굴 구덩이마다 잡초만 무성해 할 말을 잊게 한다. 아직도 철조망너머 늪지대엔 수십개의 구덩이가 미발굴 상태로 남아있다. 안내를 맡았던 현지교민 김성태씨는 "캄보디아 가이드들은 절대로 이 현장을 안내하지 않습니다. 귀신이 많아 다녀오면 시름시름 아프게 된다고 믿습니다"고 들려준다.
내친김에 투올 슬랭 박물관에도 들렀다. 이곳은 원래 중고등학교였는데 크메르 루주가 '제21보안대'라는 수용소로 바꿔 교실을 고문실이나 감옥으로 개조했다. 여기에서 전직관료, 의사, 교사, 학자, 승려 등과 그의 가족들이 죽어나갔다. 그래서 현재 캄보디아의 인구구성이 여자가 60%가 넘고 지식인층이 없는 기형적인 구조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당분간 캄보디아는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교실마다 각종 고문도구와 살해된 4천여명의 사진이 빼곡이 전시되어있다. 수인번호를 목에 걸고 찍은 이들의 얼굴에는 흑백사진임에도 죽음의 공포를 뚜렷히 드러내고 있다. 저렇게 어린 아이들도 죽어 나갔을까? 해골로 만든 캄보디아 지도가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착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발길을 돌렸다. 캄보디아에는 인구의 3%가 넘는 약 32만여명의 장애인이 있다. 지뢰로 인해 손, 발, 다리 등 절단수술을 받은 10만여명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전과 관련된 장애인이다. 프놈펜에 있는 리햅 크래프트 캄보디아(Rehab Craft Cambodia)는 내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다. 이들은 여기서 재활교육을 받고 나무조각품이나 가죽제품들을 만들어 판매한다. 한달 수입은 대략 60~70달러 정도. 뉴질랜드 해외개발원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고 있다.
1974년 두다리를 잃은 친 추온(48)은 RCC내 1백여 자영업자중 한명이다. 그는 "RCC에서 나무조각 훈련을 받은 후 내손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되기를 25년간이나 기다렸다"며 웃었다. 바탐방 근처에서 군복무중 지뢰에 한쪽다리를 잃은 레앙 사란(36)은 1995년 6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한식구가 됐다. 양손 또는 두 다리가 없이 조각하고 가죽제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이들은 여기서 생긴 수익은 전부 재투자하거나 새 식구의 교육비로만 쓴다.
킬링필드는 끝이 났지만 그 생채기가 아물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프놈펜=朴云錫기자
multicult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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