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푸틴의 방북, 그 이후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중국과 북한을 잇따라 순방한 것은 북한과 화해의 물꼬를 트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사건이다. 푸틴이 구소련과 러시아 체제를 통틀어 러시아 최고 지도자로서는 최초의 북한방문 기록을 세우면서 '평양'행을 한 것은 그만큼 북한과의 대화가 절실했음을 의미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미.일.중의 강국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열띤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유독 러시아만 그동안 위축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만큼 이번 푸틴의 북한 방문은 이러한 열세를 극복하고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키 위한 러시아의 '승부수' 쯤으로 보아 무방할듯 하다.

그리고 이러한 푸틴의 승부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 결과 11개항의 조.러 공동선언에서 어느 정도 현실화 되고 있는 느낌이다. 공동선언문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제2항의 '북한과 러시아는 평화와 안전에 위협을 주는 정황이 조성될 때는 지체없이 서로 접촉할 용의가 있다'는 대목이다. 이 대목을 따지고 보면 러시아는 한.러 수교이래 한동안 지속돼온 우리와의 두터운 우의를 청산하고 북한 정권과의 관계개선으로 돌아선 느낌을 준다. 이것은 그만큼 한.러와 북.러 관계에서 러시아의 중심축이 북한쪽으로 쏠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로서는 결코 소홀히 다룰 일이 아닌것이다. 러시아가 이처럼 북한을 끌어들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이라는 단극(單極)체제에 맞서 다극적 국제질서를 추구함으로써 새로운 냉전체제를 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길 없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를 위해 군사협력 등으로 북한을 끌어들이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고 본다. 따라서 이 시점에 러시아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조.러공동선언에서 밝혔듯이 러시아는 남북한 정부의 한반도 통일노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에서 남한도 참여하는 북.러 경제협력 사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시각이 없지 않다. 이밖에 러시아산 원유를 북한내 정유후 남한 수출,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시베리아 횡단철도 사업등에 관심이 더 많은것이다. 이번 푸틴의 중국, 북한순방은 이같은 경제적 목적 이외에 군사적으로 북.러.중의 3국공조체제 확립의 노림수가 있다. 미국의 국가 미사일방위(NMD)와 전역미사일방위(TMD)가 군비경쟁을 다시금 촉발시키고 있다는 푸틴의 주장이 상당 부분 명분을 얻고 중국 북한이 호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이번 푸틴의 평양 방문과 G8참석은 구소련의 붕괴이후 2등국가로 몰락할 위기에 몰린 러시아가 국제외교 무대에 재등장하는 계기가 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