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상봉 기다리는 할머니-이끝남씨

입력 2000-07-18 14:41:00

"죽기 전에 한번 볼 수만 있다면 무슨 여한이 있겠어요. 처자식이 딸려 있더라도 괜찮아요. 어떻게라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뿐이지요"

반세기 동안 남편(이복연.73)의 사진을 벽에 걸어두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찾아 오겠지…'라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안동 이끝남(73.안동시 동부동) 할머니. 17일 북측 상봉단 명단이 발표되자 불현듯 뼈에 사무친 그리움이 피어 오르면서 기억은 50년 전 6.25 당시 남편과 헤어졌던 서울 한강 뚝섬 피난길로 거슬러 간다.

"그때 리어카에 짐을 잔뜩 싣고 네살, 한살박이 아들 둘을 짐 위에 앉힌 뒤 시숙을 따라 먼저 피난길에 올랐지요. 남편은 자전거를 구해 금방 뒤따라 내려온다고 했는데…"그 길이 끝이었다. 생이별 50년.

"남편이 나를 찾는다고… 북쪽에 있다고…" 너무나 뜻밖의 소식에 한동안 멍하니 벽만 바라보던 이 할머니는 아무 말없이 벽에 걸려 있던 남편 사진(헤어질 당시 25세) 액자를 내려 먼지를 닦아 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만나면 '그동안 뭘하다가 이제사 찾아 오느냐'고 한번 물어 보고 싶기도 합니다. 내가 그린 사군자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요"

사진속 남편은 20대 초반. 칠순이 넘은 할머니의 손자(27)보다도 나이가 어리지만 그동안 멈춰 버린 시간은 할머니를 20대 신혼초 새댁으로 돌려놨다.

전쟁이후 찐빵집에서 부터 안해 본 일 없이 두아들을 키워 온 이 할머니의 잃어버린 50년. 중풍으로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지만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집안 청소를 하고 새 살림도 들여 놓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안동.權東純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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