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태초로부터 물에 의지해서 살아왔다. 좋은 물줄기를 생명의 젖줄로 삼았던 민족은 살아 남았고 그렇지 못한 민족은 일찍 멸망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는 물이 흐르는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쓴다.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라는 뜻이다. 물은 만물에게 무한한 혜택을 주면서도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몸을 낮추면서 커진다. 이 같은 특성만으로도 물이 '상선'이란 말을 들어 마땅하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 만물은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지만 물은 항상 이들이 싫어하는 쪽,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한다. 물은 낮은 곳만을 골라서 흐르다가 이윽고 바다로 커진다.
만물은 무엇이든 형태를 지니고 있다. 둥근 것도, 모난 것도, 큰 것도 작은 것도, 딱딱한 것도, 부드러운 것도 있다. 그러나 물은 형체를 가지지 않는다. 물은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다. 원통의 그릇에 담기면 원형이 되고, 사각의 그릇에 담기면 사각이 되며, 삼각이 되는 것도 마다 않는다. 물은 이렇게 형체를 고집하지 않으면서 있는 곳에서 스스로 변형하면서 커진다.
큰 바다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것을 '하해불택세류(何海不擇細流)'라 표현한다. 부자는 코 묻은 돈도 가리지 않고 받아 넣어 큰부자가 되고, 큰 인물은 하찮은 사람도 자기편으로 끌어넣어 큰 인물이 된다. 그러므로 큰 인물이 되려는 자는 바닷물이 시냇물도 끌어 모으듯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토록 인간에게 더 없는 교훈을 주기에 물은 상선이라는 말을 듣는다. 때문에 현명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물이 주는 교훈을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를 터득할 줄 알아야 한다.
물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몇 년 전만 해도 좋은 물을 자랑으로 알던 우리가 이제는 남의 나라에서 물을 사들여와서 산다. 사람들은 물을 아끼고 사랑하고 무엇보다 물에서 배워야 한다는 외경의 마음을 잊었다. 교만하고 방종하고 무엇이나 아낄 줄 모르게 된 우리의 사악한 본성이 결국 일을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
우리는 본디 순하고 겸손해서 농경민족이 갖는 여러 가지 미덕들을 잘 지켜왔다. 우리는 흰 것을 좋아하고 육식보다는 채식을 주로 했으며 자연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산과 물에 의지하고 그것들을 사랑하고 아꼈다. 곡식은 기다리지 않으면 익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농경민족은 수렵민족보다 참을성이 많으며 기다릴 줄 안다. 그것이 우리였다.
그러던 우리가 성정이 급하고 참을 줄 모르며 남을 잡아먹기 좋아하는 저급한 민족으로 전락했다. 참을성을 잊은 탓으로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어른들에게도 주먹질을 하고, 급기야는 자기를 낳아서 길러준 어버이조차 칼로 찔러 죽인다. 자업자득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좀 살게 되었다고 우쭐대는 꼬락서니가 우리 자신이 보아도 역겨우니 남에게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당장에 숨쉴 공기와 마실 물도 얻기 어려우면서도 매년 수해를 당하는 이중고(二重苦)를 우리는 겪으며 산다. 산과 물을 잘 다스리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 하는데, 새 천년에 들어섰다고 떠들면서도 겨우 치산치수나 하고, 국방이나 감당하는 정도의 야경국가(夜警國家)에서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한양대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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