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몽골의 뿌리 찾기

입력 2000-07-15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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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성씨(姓氏)는 아버지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존스의 아들(John's son)이 존슨이다. 러시아도 비슷하다. 유명한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로 도스토이의 자손이며 미하일의 아들인 표도르란 뜻이다. 또한 직업이나 생김새가 성씨로 등가문장하기도 했다. 베이커는 제과업자, 스미스는 대장장이, 카펜터는 목수에서 연유한 성씨다. 우리는 서양보다 뿌리를 훨씬 더 중시했다. 고주몽.석탈해.김유신 등 삼국시대부터 왕족들에겐 성과 명이 있었지만 서민들은 고려에 들면서 성명을 가졌다. 조선조에는 오늘날 주민등록증과 같은 '호패'와 '족보'가 등장했다. 더구나 성명에는 성씨.항렬.자가 들어 있어 어떤 혈통의 몇대 후손인 누구인가를 알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이 중국이나 일본의 혹독한 민족말살정책에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성씨와 가문을 중시하는 전통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이름 만으로도 자신이 놓인 위치와 가문에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깨달을 정도였다. 이래서 우리는 자신이 욕을 먹는 것보다 조상을 욕하면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 성씨에 대한 인식이 민족의식의 출발점이 됐던 셈이다. 1921년 공산화 이후 구 소련은 칭기즈칸의 후예인 몽골족의 성씨를 말살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가문이나 집안을 나타내는 공통성을 잃게 돼 버렸다. 지금도 60% 이상이 자기의 성을 모르며 친인척도 알지 못해 근친혼이 성행, 우성학적으로 열성인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 서양 사람들은 이 현상을 '몽골리즘'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몽골인들이 최근 80여년간 잊혀졌던 성씨 찾기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가족간의 유대가 파괴되고 민족의 날개가 꺾였던 몽골족의 뿌리 찾기 열기는 빼앗겼던 역사와 전통에 대한 눈뜸이자 옛 기상의 회복 운동에 다름아닐 것이다. 몽골의 인민혁명당은 개혁과 개방에 나서고 있어 우리가 각별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일제의 '창시개명' 악몽이 새삼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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