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중·고교의 기말시험이 끝났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그동안 배운 수업의 평가라는 본래 취지를 잃어버린지 오래. 고입 연합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입시에서 학생부가 중요해짐에 따라 내신성적을 얼마나 잘 받느냐가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이다.
그만큼 학생, 학부모가 시험을 대하는 태도도 예민해졌고 불만도 많아졌다. 교사 개개인이나 학교 단위로 해결책을 찾기 힘든 문제점도 불거진다. 이제는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난이도와 학력 동반 하락
자기 학교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중간·기말고사를 쉽게 내는 현상은 전국적으로 보편화됐다. 그렇지만 문제의 난이도에 대한 불만은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과목에 따라 지나치게 쉽게 출제함으로써 만점자, 고득점자가 너무 많이 나올 경우 상당수 상위권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떨어뜨린다. 하위권 학생들의 의욕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난이도 하락은 전반적인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실제 고교 1, 2학년의 학력저하는 심각한 상태로 드러나고 있다. 대구의 경우 6월 모의수능시험을 기준으로 지난해와 비교한 결과 인문계의 경우 총점에서 무려 25.6점(400점 만점)이나 떨어졌고 자연계는 총점 14.5점 하락했다.
지나친 학력 위주의 학교 교육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교육당국이 이를 개선한답시고 기초학력마저 보장하지 못한다면 정반대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베낀 문제는 싫어요
자의건, 타의건 교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기출문제나 시중에 판매되는 문제집을 베끼고 있다. 과다한 수업, 잡무, 빡빡한 학사일정 등을 감안하면 교사들의 고충도 이해되는 부분이 적지 않으나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특정 문제집이나 지난해 문제를 베꼈다가 말썽이 나 재시험을 치르는 학교가 갈수록 늘어나는 점만 봐도 그렇다.
이번 기말고사를 친 모여중생은 "반마다 음악 문제집이 다른데 특정 반에서 사용하는 문제집에서 그대로 출제해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이 학교는 결국 재시험을 치렀으나 "선생님이 기분 나빠서인지 문제를 너무 어렵게 출제해 시험을 망쳤다"는 학생이 많아 학교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 학년에 두 명 이상의 교사가 한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 특정 교사가 출제함으로써 다른 반 학생들이 불리하다는 이야기도 많다. 공동출제보다는 편의에 따라 번갈아가며 문제를 만드는 탓이다.
▲느린 선생님, 비좁은 문제지
시험 중간 쉬는 시간은 10분. 평소 수업 때와 같다. 그러나 시험기간에는 15분이나 20분으로 늘려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많다. 답안지를 걷고 하다 보면 쉬는 시간은 5분도 채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볼일을 보고 다음 시간 시험을 준비하기에는 숨이 차다.
여기에 시험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느릿느릿 교실에 들어와 잔소리 몇 마디 하고 문제지를 돌리는 교사. 만약 수학이나 과학, 영어 같은 과목에 걸리면 학생들은 속으로 아우성을 친다. 잘못 하면 옆 반 보다 10분은 늦어지기 일쑤다. 1분이 안타까운 학생들로서는 교사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학이나 물리 등 계산이 필요한 시험시간에 연습장을 못 쓰게 하는 교사도 미움 받는다. 시험지의 여백이 비좁아 문제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은 학교측에서는 흔히 간과하는 사소한 문제지만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절박한 것이다.
▲불만을 들어주세요
학교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불평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게 옳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 가운데 단 한두 가지도 바뀌는 게 없다는 것은 여전히 공급자 위주의 교육이 우선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학생들의 예민함에는 아랑곳없다. 시험문제 출제와 관리에는 그저 종래의 방식이 편하다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내신성적이 중요해졌다고 하지만 학교측에서 학생,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학교시험에 대해 어떤 조사를 했다거나 토론회를 가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학부모들의 경우 이의를 제기하면 자칫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교사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할까봐 냉가슴만 앓고 있다.
우선 학교측이나 교육청에서 이같은 불만의 소리를 솔직히 들어보는 것이 급선무다. 학교 단위 변화가 쉽지 않다면 교육청 차원에서 시험문제 출제와 시행방식 등에 대해 공통의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지엽적인 부분으로 여기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학생 입장에서 재고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교육당국이 아무리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꾼다고 외친들,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시험과 내신 관리에 무감각하다면 "여전히 교사, 학교 위주의 교육"이라는 불만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金在璥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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