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도 에어컨도 여름을 날려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한낮은 물론 '열대야'라는 이름으로 한밤중까지 점령해버린 더위.
공포만화를 펼쳐 지독히도 끈적거리는 이 여름을 떨쳐보자. "그거, 애들이나 보는거 아냐" 아직도 촌스런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곧 만화방으로 달려가보자. 그 곳에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공포만화의 기본서는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 컬렉션'을 꼽는다. 최근 천리안에 팬클럽(go ito)이 생겼을 정도로 이토 준지를 빼놓고 공포만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16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는 한 웹진(인터넷 잡지)에 소개된 독자의 말처럼 '작가의 정신구조가 어떨지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토 준지의 작품은 한 마디로 그로테스크하다.
그의 만화에는 유령이나 흡혈귀같은 전통적인 소재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동급생의 얼굴을 훔치는 여학생(얼굴도둑), 변심한 애인을 죽이고 그가 읽어주는 시나리오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시나리오대로의 사랑), 오래된 터널에 얽힌 저주(터널괴담), 네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지 묻는(사자의 상사병) 등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가 유령과 흡혈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친숙한 주변의 일상이 기괴함으로 '불쑥' 다가올 때 우리의 공포심은 배가된다는 것을 작가는 꿰뚫어내고 있다.
이토 준지의 최근작 '소용돌이(1~3)'는 소용돌이 무늬라는 '흔한'소재를 통해 읽는 이들의 치를 떨게 한다. 인간이 소용돌이의 저주로 끈적끈적한 '달팽이'로 변하는 장면, '인간달팽이'를 구워먹는 장면 등에서 사람들은 공포를 넘어 역겨움을 느낀다.
어둠에 대한 인간의 원시적인 공포를 잘 보여주는 미네타로 모치즈키의 '드래곤 헤드'도 빼놓을 수 없는 공포만화의 수작.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재앙으로 대낮에도 앞을 식별하기 힘든 어두운 재의 하늘, 지진과 해일로 파괴되어 버린 도시, 미쳐 가는 인간들의 집단광기….
작가는 이러한 묵시론적인 세계를 무대로 살아남은 인간들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변질돼가는 과정을 사실적인 화풍으로 보여준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도 몇몇 마니아들의 입소문으로 전해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 나치시대를 무대로 인간개조실험을 받은 요한이라는 절대악과 이를 뒤쫓는 일본인 의사 닥터 덴마를 내세워 인간내면의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국내 작가 작품으로는 형민우씨의 '프리스트'가 단연 돋보인다. 종교문제를 만화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한 이 작품의 주인공(이반 아이작)은 한때 젊은 신부로서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또 다른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힌 인물로 선과 악 어느 쪽에도 속하기를 거부한다. 차라리 프리스트는 신에게 등을 돌린 악과 악의 싸움에 가깝다. 모두 6권으로 구성된 시리즈물.
崔敬喆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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