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프고, 열 나고, 목도 따끔거립니다. 김약사, 서로 아는 처지이니 감기약 몰래 좀 지어 주시오" "안됩니다. 종합 감기약을 드시든지, 병원 가서 처방전을 받아 오세요".
"약사님, 게보린 한알, 콘택600 하나 주세요" "안됩니다. 약은 낱개로 팔지 않습니다. 20개 또는 30개 단위로만 판매합니다" "아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요! 내 돈 주고 약도 마음대로 못 사먹는단 말이요?".
의약분업이 강제 시행되는 다음 달엔 동네약국 마다 환자와 약사간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마음대로 약을 사 먹던 '좋은 시절'이 가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약 하나 마음대로 구입할 수 없는 시절이 왔기 때문.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국 사랑'은 유별나다. 어지간하면 병원이 아니라 약국으로 뛰어 갔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되고 동네마다 병의원이 늘어 난 뒤에도 이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1998년 경우, 의료보험 자료에 따르면 약국에서 일년간 이뤄진 조제는 무려 1억9천만건. 약국 조제약의 의료보험 적용률이 4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론 한햇 동안 무려 5억 건의 조제가 이뤄졌다고 추산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병의원 처방 건수와 맞먹는 수치. 실제 1차 진료기관은 동네의원이 아니라 동네약국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의료계에서는 의약분업 이후 환자들을 약국에 더 뺏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의사의 진료를 받고 다시 약국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약국에서 여러가지 일반 의약품을 섞어 산 뒤 알아서 먹는 자가투약(self medication)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그러나 약사들은 이런 걱정은 기우라고 일축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약국 찾는 환자가 증가 하겠지만, 결국 일반의약품 판매가 아니라 처방약 조제가 약국의 주수입원으로 자리 잡으리라는 게 약사들의 예상이다.
대구시 약사회 석광철 홍보위원장은, "약국에서 의사의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만으로도 감기약을 조제할 수 있다고 의사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약효를 따져보자. 약효가 강한 약은 전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일반 의약품으로는 한계가 있다. 강한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는 감기 등 가벼운 환자들도 약국에서 '전문의약품'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곧바로 약국에 갔다간 약효 가벼운 '일반의약품' 밖에 살 수 없게 되고, 그 때문에 더 효력 높은 약을 먹고자 한다면 결국 의사한테 가야하게 되리라는 얘기이다. 종전 약국을 찾은 환자들의 70%가 전문의약품을 사 갔다는 통계가 이런 실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의약분업으로 약국은 이제 1차 진료기관의 자리를 동네의원들에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환자를 두고 동네 의원과 경쟁하던 약국이 이제는 새로운 공생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동네의원의 환자가 줄면 동네약국의 생존 기반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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