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세습정치

입력 2000-06-26 16:19:00

아들.형제 등 친족의 등용주의를 '네포티즘'(nepotism)이라 부른다. 라틴어의 네포스(nepos)에서 유래된 '네포'는 영어로는 조카(nephew)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지도자로 키울 어린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격리시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가족을 '사리의 방패'로 매도했다. 그럼에도 네포티즘은 권력을 유지하고 승계하는 방법으로 존속되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끈끈하고 영속적인 단위가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핏줄에 의한 왕위 세습이 아니더라도 권력자가 '말 잘 듣고 똑똑한 측근'을 후계자로 세워 권력의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동서고금을 통해 거의 모든 정치 체제에서 발견된다. 세계의 국가들 가운데 영국식이든 미국식이든 '서구형 민주정'을 그대로 실천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이 시늉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일본은 조그만 우동가게에서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가업을 잇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특유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 '미덕'에는 유권자의 투표 성향 등도 가세한다. 권력 잡기에는 지방(지역연고).간방(지명도).가방(자금력) 등 '3방'이 지름길이라는 말도 있다. 이 조건에 유리한 2세는 머리를 숙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25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는 자민당에 힘을 실어 주면서도 정권교체는 견제하는 '절묘한 선택'을 한 가운데 중의원 세습후보 3명을 당선시켰다. 자민당의 오부치 전 총리의 차녀 유코, 다케시타 전총리의 친동생 와타루, 가지야마 전 관방장관의 장남 히로시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모두 거물 정치인들의 선거구를 물러받은 경우로 뿌리 깊은 일본 특유의 세습정치 전통을 새삼 실감케 한다.

특히 유코 후보는 재임중 쓰러진 부친에 대한 동정표가 몰려 부친처럼 최연소(26세) 당선 기록을 세웠으며, 와타루 후보도 동정표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세습의원에 대한 논란은 없지 않은 모양이지만 폐해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에 2세 존중의 관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본은 역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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