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칼럼-정서적 자본주의

입력 2000-06-26 16:20:00

내 모양이 좀 요사스러웠던게지. 속리산 어귀에 도라지 파는 할머니가 "할로!"한다. "할머니 저보고 캤어요?""아이고 할로 아니구나"우린 웃었다.

그래, 이젠 산 어귀 도라지 장사를 해도 '할로' 한마디는 할 수 있어야 장사가 되는 세상이다.

어디 슈퍼 만인가. 재래시장에도 영어상표를 못 읽으면 장도 못 볼 판이다.

돈도 한국 돈이 아니다. 세계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상품도 순 국산이 없다. 은행, 증권, 회사도 마찬가지. 어느새 우린 세계 시장 한복판에 서성이게 된 것이다. 세계 시황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참으로 고맙게도 우리의 교역량은 세계 10위권이다. 만들어 파는건 잘하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로서의 의식이다. 한마디로 우린 아직도 폐쇄적인 국수주의, 한국적 악평등주의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게 세계로 뻗는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시장 원리에 따른 무한 경쟁체제다. 사회주의는 완패했다. 더구나 요즈음 우리는 남북의 경제 격차를 지켜보면서 자본주의체제의 우위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덕분에 잘 살게 되었고 그 단맛을 단단히 보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의 형식논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서적인 차원에선 아직도 사회주의 의식이 상존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자본주의가 아직 우리정서에 배어 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린 아직도 '있는×''잘사는×'소리를 쉽게들 한다. 도둑이니, 심지어 이들의 호화 사치 외제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매도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겐 부의 형성과정에 문제가 많았다. 정경유착, 부정.부패, 탈세…도둑 소리를 듣게 된 소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 소위 신흥졸부의 작태는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부자로서의 윤리실종이다.

그래도 우린 여기서 참으로 냉정해야한다. 우선 '같이 잘 살아야지, 제가 뭔데'하는 생각부터 지워야 한다. 같지가 않다. 과정이 어떠했건 그는 지금 부자다. 고로 나보다 잘 살 자격이 있다. 배가 아파도 이걸 인정해야 한다. 분수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다고 서러워해서도 안된호화.사치라지만 나와는 생활감각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백만원 중고차를 타는 사람에겐 억대 외제차는 분명 호화.사치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되는 사람에겐 사치가 아니다.

억대 코트.가구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우리 걸 팔면 남의 것도 사줘야 한다. 기억하라. 우린 지금 세계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사줄 형편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다. 그래야 무역소송을 면할 수 있다. 우리 형편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외제차를 사야겠다는 속사정을 이해한다면 있는 사람 돈 쓴다고 매도할 일은 못된다.

그뿐인가. 그런 고급품을 접해봐야 우리 메이커들도 안목이 높아질 게 아니냐. 안 보면 못 만든다. 밤낮 싸구려나 만들어 싸구려 시장에서 장사할 셈인가.

부자는 있어야 된다. 있는 사람이 써야 시장이 돌아간다. 세금도 많이 낼 것이고 기업도 일으켜 일자리도 만들어 낸다. 존경까진 안해도 좋다. 그러나 감사히 여길 줄은 알아야 한다. 노력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공평한 사회다. 똑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한국적 악평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산품 애용이라는 기치로선 세계 시장에 나갈 순 없다. 경쟁 체질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도 폐쇄적 국수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형식 논리만이 아닌 정서적 차원에서도 자본주의가 정착되어야 비로소 세계 시장에 나갈 자격이 있다.

오해말자. 낭비하자는 건 아니다. 큰 장사를 하자는 거다.

성균관대 의대교수.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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