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위기대응 능력 '낙제점'

입력 2000-06-26 00:00:00

의료계 폐·파업이 26일 0시부터 철회되고 의사들이 진료에 복귀, 지난 20일 시작됐던 의료대란 사태가 큰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 근거가 됐던 약사법(藥事法) 개정의 구체적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 앞으로도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다, 이번 결정과정에서 소비자인 국민이 소외되고 공권력이 집단의 힘에 밀려 국가 기강이 무너지는 등 '국가관리력의 동요'라는 의료 외적 문제까지 심각히 제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김재정 회장은 25일 심야에 폐·파업 철회와 진료 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앞서 25일 오후 3시부터는 폐·파업 철회안에 대한 의협회원 투표가 실시돼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날 투표 회부는 24일 오후 5시부터의 여야 영수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됐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회담 시작 30분만에 '7월 중순 이전 약사법 개정'에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영수회담에서도 약사법 개정의 방향은 결정되지 않아, 의협 내부에서도 폐·파업 계속을 요구하는 강경 주장이 계속되고 있고, 김 회장도 "우리 요구대로 약사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재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대한약사회 역시 영수회담 직후 강력히 반발했으며, 25일 오후 "법 개정 방향을 봐가며 행동을 결정키로 하고 우선은 의약분업에 동참한다"는 쪽으로 태도를 일단 후퇴시켰다.

이로써 6일간 계속된 의료대란은 큰 고비를 넘겨 26일 대구·경북 등 전국의 병·의원이 일제히 문을 열고 정상 진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여야 영수가 국가 중대사를 원칙에 충실하는 대신 힘에 밀려 결정하고, 검찰까지 의사에 대한 수사 의지를 후퇴시킴으로써 국가 기강을 문란케 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식인층의 상당수 인사들은 영수회담 결과를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무원칙·무책임한 대응으로 민주 질서가 위협받게 되고 사회 개혁은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개탄했다. 또 "안그래도 '무소신 정부'라는 등 국가 지도력에 불신이 팽배해 있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정신적 무정부 상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한탄했다.

나아가 이번 결정이 '소비자(국민) 중심'이라는 원칙을 망각, 결국 의료계 이익 추구에 굴복하느라 또다시 모든 추가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가 버리는 결과를 빚었다는 비난도 폭주하고 있다. 국민들은 연간 3조5천억원 이상의 진료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임시취재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