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철의 재즈 타임 공개방송

입력 2000-06-21 14:03:00

여름 뙤약볕은 참 길기도 하다. 그리고 눅눅한 습기. 확실히 여름이라는 계절은 우리를 쉬 지치게 만든다.

게다가 초록까지 잃어버린 회색빛 도가니. 도시인들은 해질 무렵, 오늘에 눌린 어깨와 내일에 대한 소름끼치는 공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다.소리가 있는 공연장을 찾아가는 것도 '스트레스'라는 문신을 지워버리기 위한 것. 짧은 어둠이 끝나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지우려 그들은 종종걸음 친다.

지난 해 말 시작, 한 달에 한번씩 TBC 드림FM '최광철의 재즈타임'이 공개방송형태로 무대를 여는 '재즈 콘서트'도 이런 부류의 도시인들이 피곤했던 하루를 묻어버리는 장소. 이 달 공연은 지난 16일 오후 8시,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팝스 대구'에서 열렸다.

70여평의 비교적 좁은 공간. 공연시작 전 이미 거의 모든 자리가 들어찼지만 저녁 내내 사람들은 꾸역꾸역 모여든다. 황금빛 색소폰, 그리고 피아노, 베이스, 드럼. 어떤 소리가 나올까. 사람들은 연신 음료수를 홀짝이며 무대를 응시한다.

이 날 무대에 올라 선 사람들은 최광철과 재즈포트. '최광철의 재즈타임'을 진행하는 색소폰 연주자 최광철씨를 비롯, 이우창(피아노)·정중화(베이스)·안기승(드럼)·정소임(보컬)씨 등 5명의 연주자가 무대를 채운다. 분지의 도시 대구에 정통 재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

베이스를 맡은 정중화씨는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 정성조씨의 아들. 드럼을 맡은 안기승씨는 제법 나이가 들어 뵈는 구수한 인상. 한껏 차려 입은 요즘 연주자들과는 구분된다.

정적을 깨는 피아노 소리. 이윽고 '재즈'가 쏟아진다. 첫번째 곡은 블루스 냄새 가득한 '블루 몽크(Blue Monk)'. 다음은 가뿐한 보사노바풍의 '리카르도 보사노바(Recardo Bossanova)'.

중간중간 박수가 터져나오고 함성이 이어진다. 어쩌면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은 정형화된 음악회에 대한 중압감을 떨쳐버리려 발걸음을 옮겨왔는지 모른다.

언제 박수를 쳐야할지조차 알쏭달쏭한 클래식 음악회. "음악이 끝났는데 왜 박수를 안치나. 아 이제야, 1악장이 끝났구나". 숨죽인 채 한참동안 머리를 굴렸던 일. 사람들은 재즈 음악회에서 '음악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경험한다.이 날 무대도 그랬지만 재즈 무대의 재미는 색소폰에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외형 자체도 화려하지만 멜로디를 주도하는 장악력이 돋보인다.

우리나라에 재즈바람을 불어넣었던 것도 사실 색소폰의 공이 크다. 몇 해전이던가. 저녁마다 사람들을 TV앞으로 불러모은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 차인표는 색소폰을 불었고 사람들은 차인표와 더불어 색소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또 클린턴 미 대통령이 색소폰을 부는 모습도 얼마나 멋있었던가.

그리고 케니 G. 그의 색소폰 소리에 매료된 우리의 젊은이들이 용돈을 털어 중고품이라도 최소한 수십만원씩 하는 색소폰을 손에 넣고 기뻐하기도 했다.

색소폰 연주자 최광철씨는 이 날 연주에서 국내 최고수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색소폰의 매력을 소리로 보여줬다. 조용한 곡, 빠른 곡. 빠르기에 관계 없이 그의 소리는 거침 없다. 우리 소리를 넣어봤다는 '테이크 파이브(Take Five)'에서 그의 색소폰은 태평소 소리를 듣는 듯 변화무쌍하다.

노래없는 연주가 조금 식상해질무렵, 여성보컬 정소임씨가 무대에 올라 선다. 저음에서 다소 탁한 느낌이 들긴하지만 저음부터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무대가 웬만큼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최광철씨는 한 사람을 무대로 초청한다. 영남대 음대 장한업교수. 장교수는 무대에 올라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재즈에 대한 칭찬을 한마디한다. "재즈도 배울 것이 많은 음악 장르의 하나"라고. 관객들은 클래식을 전공한 교수의 말을 통해 재즈의 '음악적 깊이'를 새롭게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피날레는 '썸머 타임'으로 끝났다. 관객들의 박수리듬과 함께.

이 날 공연을 주최한 TBC는 매 달 여는 재즈음악회외에도 올 가을쯤에는 국내 최고수준의 재즈 뮤지션 '신관웅 재즈 빅밴드'와 외국의 연주자들을 초청, 대형 재즈무대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재즈팬들에게는 여름날 소낙비처럼 시원한 소식.최광철씨는 "대구에 재즈를 연주하는 클럽은 있지만 연주자가 절대 부족한 상태여서 연주회때마다 서울에서 연주자들을 데려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공개방송 등 재즈무대를 자주 열어 대구에 재즈바람을 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崔敬喆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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