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구조조정 무원칙 '불안'

입력 2000-06-20 15:03:00

하반기 우리 경제 최대 과제인 금융 구조조정을 놓고 정부의 무원칙과 혼선이 계속돼 금융불안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 구조조정이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금융기관은 물론 일반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한 원칙 없이 즉흥적인 정책추진, 말 바꾸기, 협의 없는 일방적 발표 등 난맥상만 보여주고 있다.

이헌재 재경부 장관, 이용근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등 정부의 최고 금융당국자들은 지난달 공적 자금이 투입된 조흥, 한빛, 외환은행을 금융 지주회사로 묶어 합병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지난 14일 이종구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외환은행이 아닌 서울은행이 합병대상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여러 합병설 중 대상이 정확히 거명된 유일한 방안이 3주일만에 정부내 다른 당국자 입을 통해 번복된 것이다.

외환은행에는 외국인 대주주가 버티고 있는데도 정부가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합병대상에 포함시켜 당초부터 이 방안은 사려 없는 즉흥적 정책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해당 은행과 협의를 거치지 않는 일방통행식도 무리를 낳고 있다. 외환은행은 지난 17일 전국 부.점장회의를 통해 합병가능성을 강력히 부인하는 등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지주회사를 통한 지방은행 합병안을 흘려 여론 떠보기식으로 추진하는 태도는 해당 지방은행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지방은행장들은 지난달 모임을 갖고 지주회사에 대해선 앞으로 논의도 하지 말자고 결의하는 등 이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부의 개입여부에 대한 원칙도 흔들리고 있다. 이용근 위원장, 이기호 경제수석 등은 3월 "금융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는 어떠한 시나리오도 갖고 있지 않으며 직접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지난달 이 위원장 등이 직접 나서 3개 은행의 지주회사 합병방안을 발표해버렸다.

또 이헌재 장관은 지난달 "자율적인 은행합병이 올해안에 이뤄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과 말했으나 나흘 뒤 이용근 위원장은 "일부 은행이 합병을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해 정부 발언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구조조정에 관한 정부 정책이나 발언이 오락가락하면서 금융기관 생사도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무책임한 정책추진이 금융 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혼란을 증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李相勳기자 azzza@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