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전야 약타기 전쟁

입력 2000-06-20 15:27:00

대구시내 각 종합병원의 19일 밤 풍경은 차라리 전쟁을 연상케 했다. 오늘부터의 외래 폐문을 예상해 미리 장기 복용약을 타려 평소의 2배 이상에 달하는 환자들이 몰려든 탓. 때문에 약을 타는데는 거의 10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밤 10시가 돼도 약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해 20일로 지급을 연장하기까지 했다. 또 많은 환자들은 아예 병원 바닥에 드러누웠다가 결국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이날 오후 5시30분까지 정상진료를 한 계명대 동산병원 경우 평소의 3배 가까운 6천여명의 환자들이 대거 몰려, 약 처방을 받은 4천300여 환자 중 1천여명이 밤 늦도록 기다리고도 약을 타가지 못했다. 병원측은 약사 30명 외에 지원부서 직원 10여명까지 약국 업무에 투입했으나, 합천에서 왔다는 유모(60)씨는 오전 10시에 진료 접수를 하고 밤 8시30분에야 약을 찾게 됐다고 불평했다.

영남대병원 조제실 앞 바닥에는 밤 10시쯤에도 약을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늘어 앉아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지쳐 포기하고 귀가, 약국 창구에는 주인 없는 약봉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대구시 봉덕동 변모(65)씨는 "밤을 세워서라도 약을 타가야 한다"며 10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빈혈증 환자 서경순(47.경남 거창)씨는 3천275번 번호표를 가지고 로비 소파에 아예 드러누워, "오히려 생병이 날 판"이라고 지쳐했다.

파티마 병원에선 밤 10시쯤까지 약을 기다리는 환자가 800여명에 달했고, 약을 타 간 1천800명 환자들이 대기한 시간은 평균 9시간이나 됐다. 안동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73)는 관절약을 받으려고 점심.저녁을 꼬박 굶었다며 완전히 늘어진 표정이었다. 상주에서 왔다는 배순하(72) 할머니는 약 기다리다 막차 놓쳤다고 울상을 지었다. 밤 8시30분 쯤에는 병원측이 약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방송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고 철회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경북대병원 외래약국에는 19일 하루 3천600번까지 조제 신청을 접수받았으나 2천번 이후 환자의 약은 20일 지급키로 했다. 노모의 약을 받으러 왔다는 한 40대 남자는 약국측이 무성의하다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가톨릭병원 약국 창구에서 관절약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최복교(65.여) 할머니는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해놓고 벌써 몇시간째냐"고 언성을 높였으나, 동화사 가는 버스가 끊긴다며 결국 그냥 돌아서야 했다.

이같은 사태를 지켜보던 동산병원 한 전문의는 "일본 경우처럼 병원과 약국에서 동시에 약 제조를 할 수 있게 하되, 병원에서는 약값을 높게 받고 약국에서는 낮게 책정해 환자들이 선택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을 밝히기도 했다. 임시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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