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그 험산준령의 북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고립된, '은둔의 땅'으로만 여겨졌던 티베트. 브래드 피트 주연의 '티베트에서의 7년'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들에게 은밀한 베일의 일단을 벗어 보이기도 했다.
"외부인의 접근을 허용치 않고 중세의 요새처럼 우뚝 솟은 곳" "온통 눈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꿈속이 아니고는 상상도 못할 곳"이라는 영화 속의 표현처럼 티베트는 지금껏 문명세계와는 동떨어진 세계였다.
또 최근에는 티베트인들에게 현신불(現身佛)로 추앙받는,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방한 여부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티베트라는 이름은 그 생소함을 조금은 씻어냈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은 피안(彼岸)의 세계처럼, 멀고 먼 곳임엔 틀림없다.
그런 티베트가 한 사람의 신앙에 가까운 동경과 열정 덕에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티베트에 '미친' 사람. 바로 신근호(申根鎬·56) '한·티베트문화원' 원장이다.
경북중·고, 홍익대 조소과, 영남대 대학원 졸업, 영남이공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세속적인 눈으로는 잘나가는 조각가의 이력서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미술계를 주름잡고 있다는 세칭 '홍대 패밀리'의 일원임에도 장밋빛 인생을 마다하고 그는 미지의 땅, 티베트에 빠져들었다.
티베트에 대한 그의 동경은 경북중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자신도 정확히 왜 그런 열정을 품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어쨌든 그 시절부터 막연하게 티베트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고 했다. 그리고 중·고, 대학을 거치면서, 특히 세속의 삶에 지칠 때마다 티베트를 향한 동경은 더욱 커져만 갔다고 한다. 그가 가슴 속에 키워왔던 꿈을 현실로 옮긴 것은 지난 1984년부터. 한·중 수교 이전이어서 티베트엔 들어갈 수가 없었던 때라 티베트에 가장 가까운 나라인 네팔을 찾았다. 당시 그는 대구의 한 방직공장에 위장취업해 있던 티베트인으로부터 말도 배웠다.
그리고 95년 꿈에도 그리던 티베트땅을 밟았다. 불교미술사 연구를 명목으로, 티베트가 독립국가이던 시절 수도였던 라싸에 위치한 티베트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장(西藏)대학(티베트 유니버시티)에 1년간 '고급방문학자'(교환교수)로 다녀온 것이다.
티베트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온 그는 귀국 즉시 '한·티베트 문화원'(053-651-8852, 011-826-1200)이라는 임의단체를 만들었다. 훼손되거나 밀반출 돼 사라지고 있는 티베트의 문화유산 보존과 학술 교류를 목적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내면에는 자신의 티베트에 대한 동경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는 일념이 더 강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 문화원은 지난해 사단법인으로 등록도 했고, 중국 이외 지역에 위치한 티베트연구단체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 정부로부터 공인도 받았다. 지난 59년 라싸의 소요사태가 중국군에 의해 진압된 것을 계기로 달라이 라마가 망명길에 오른 뒤 전세계의 티베트 관련 단체들이 모두 반(反) 중국성향을 보인 것과 달리 "한·티베트 문화원은 정치성을 배제하고 문화적 측면을 강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덕에 신원장은 96년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인민일보에 이름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다. 이 문화원은 같은 해 '장족(藏族:티베트족)문화예술연구소'를 서장대학내에 여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오늘이 있기 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얼마되지 않은' 재산을 티베트에 쏟아붓는 통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제 정신이 아니다"며 질시와 외면을 당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란다. 연구원이랍시고 차려 놓고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 한없이 위축되기도 했다. 라싸와 경주를 불교를 매개로 자매결연을 시도하다 경주시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고, 연구원 설립 초기 협조를 약속했던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발길을 돌리는 통에 심한 좌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주위의 싸늘한 시선이 그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신원장은 최근에는 대구시와 라싸의 협력도시 결연을 위해 바쁘다. 하지만 "티베트의 잠재력과 세계사적·문화적 중요성을 대구시측에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의 동분서주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올 가을 경주문화엑스포에 맞춰 서장자치구 가무단을 초청, 전국 순회공연을 갖게 된다. 내년에는 티베트에 학술탐사팀도 파견할 계획이다. 그가 역점을 기울이는 또다른 사업은 성사단계에 와 있는 대구대와 서장대의 자매결연 조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대구대 대명동캠퍼스 부근에서 힘겹게 이끌어오던 이곳 작은 문화원을 올해부터는 대구시 남구청이 임대료를 부담, 경제적 부담을 어느 정도는 덜게됐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 이외엔 눈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티베트 전문가가 됐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울아닌, 촌구석에 자리한" 티베트통(通)이다. 비록 신원장 자신은 "재정적 어려움과 인적 자원의 부족, 지방이라는 한계 때문에 문화원이 지금껏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지만 티베트를 향한 그의 신앙과도 같은 열정은 서서히 영글어 가고 있다.
-李東寬기자 llddkk@imaeil.com
---신원장이 말하는 '티베트'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이며, 티베트인들에게 정·교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달라이 라마, 네팔과 더불어 에베레스트 등반의 필수 코스,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포탈라궁…. 우리가 은둔의 땅, 티베트를 떠올릴 때 따라오는 이미지들이다.
신근호 '한·티베트 문화원' 원장은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티베트의 중요성을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고 다닌다. "아직 티베트의 가치를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다.
그가 강조하는 티베트의 중요성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우선 문화적으로 민속자료와 불교문화 유산의 보고(寶庫)라는 점이다. 밀교(密敎)적인 성격도 띠고 있는 티베트불교가 우리와 같은 계열인 중생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대승불교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한자로 된 불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된 고대 불경의 해석 차이를 티베트 대장경은 잘 규명할 수 있어 불교사 연구에 필수적이라는 것이 신 원장의 설명이다.
티베트의 잠재력도 무한하다고 한다. 티베트의 전략적인 중요성 때문에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장(西藏)지역 개발계획에 따라 대운하와 철도건설 등 대토목공사가 시작되면 은둔의 땅이던 이곳이 조만간 세계에 얼굴을 내민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부분은 정신적인 이유. 우리가 삶에 지쳐있을 때 티베트는 더욱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 높은 곳에 오를 수록 영혼이 정화된다며 히말라야를 오르는 고행(苦行)의 티베트승려처럼 신 원장의 티베트사랑은 흐르는 세월에도 높아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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