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싸움에 '국민만 골병'

입력 2000-06-19 15:12:00

직장인 박철우(46)씨에겐 요즘 짜증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TV·신문들에 의사들의 진료 중단, 폐업 같은 소리가 다시 등장했기 때문. 병원과 의사는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있는 것일텐데 어째서 소비자는 간곳 없고 정부와 의사들이 물고 뜯는가? 그럼 시민들은 뭔가? 의사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분통이 터진다.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도입된지 100여년. 100년만의 의료 대개혁 시도가 비틀거리고 있다. 의약 분업 외에 의료보험 조합 통합 조차 시끄럽긴 마찬가지. 허약한 우리 사회 안전판에 그나마 믿어왔던 의료 조차 이러는가, 시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과연 무엇이 어찌 돼 가고 있는 것일까?

의약 분업은 시행일을 겨우 10여일 남겨 놓고 있지만, 의료계가 반발해 착수될 수 있을지 조차 불분명해졌다. 의료계 요구의 핵심은 환자 진료와 약 처방에 대한 의사의 독점적 권리를 분명히 해 달라는 것. 정부안 대로 하면 분업은 말 뿐이고, 실제로는 종전 처럼 약국에서도 어지간한 약은 살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약 처방권만 뺏기는 꼴이라는 것. 때문에 이걸 먼저 바로 잡은 뒤 분업을 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자꾸 뭉그적거리는 인상만 주고 있다. 18일에 제법 후퇴한 입장을 발표했지만, 새 제안에서도 정부는 약사의 '임의 조제'가 이미 법으로 금지돼 있음을 다시 강조하는데 그쳤다. 물러선 폭은 "의료계가 자꾸 그걸 의심하니, 몇달 시행해 보고 나서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겠다"는 정도. 이슈가 된 부분에 대해, 의료계는 당장 손질한 후 분업하자는 반면, 정부는 시행해 보고 필요하면 보완하겠다는 것으로 차이가 요약되는 셈이다. 또 약국까지 가서 사 오도록 해서는 환자를 불편케 할 수 있다는 주사약 경우 사실상 분업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방향에서 정부가 의료계를 설득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다시 대화를 복원하기야 하겠지만 파업 초기 2, 3일 사이엔 양측이 총력을 기울여 대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의료 소비자인 시민들만 골병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시민들은 분통이 터진다. 우리는 도대체 뭣인가? 하는 것이 그 요체. "우리의 대표라는 국회는 어째서 국민의 생명이 달린 이 문제를 남의 일 보듯 하나"하는 불만도 그래서 생겼다. 정부는 어째서 아직도 탁상행정에만 매달리는가고 분개하는 시민들도 적잖다.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낸 뒤 뭘 하겠다는 진지한 태도는 없이, 그저 날짜만 못박고 앉았다가 시민들의 목숨까지 담보 잡는가"하는 것이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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