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 가톨릭계의 으뜸사제(司祭)이자 21세기 인류 양심의 상징이다. '평화의 사도'인 그는 1978년 즉위 직후부터 전세계에 화해와 평화의 씨를 뿌렸다. 79년 조국 폴란드를 찾아 동구 공산권 해체의 기폭제를 마련했으며, 89년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원해 냉전 종식의 물꼬를 텄다. 독재 체제에 신음하는 쿠바를 방문했고, 중남미.유고 등의 갈등과 분쟁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올해 대희년을 맞아 교황은 3월 12일을 '용서의 날'로 정하고 이날 미사를 통해 그간 교회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가톨릭 교회의 공헌을 내세우기보다는 그 그늘에 대해 용서를 구함으로써 화해를 모색한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1981년 자신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터키인 마흐멧 알리 아그차의 사면이 이뤄지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교황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과거 두차례의 방한 때도 한민족의 분단에 대한 연민을 표시했으며, 지난 3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 방문 요청을 받고 "그렇게 될 수 있으면 기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지구촌의 마지막 분단지역인 한반도에 대해 애정이 얼마나 큰가를 느끼게 했다.
이제 그 '기적'으로 여겨졌던 일이 '현실'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교황 초청 제의에 수락 의사를 비쳤다고 밝혔으며, 교황청에도 이 사실을 전해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미 남북 정상회담 때도 축하 메시지를 발표한 바 있지만 이번 일이 성사될 경우 화해를 위한 그의 발걸음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의 방북은 북한이 폐쇄와 고립을 떨치고 국제적으로 평화의지를 인정받게 될 뿐 아니라 대외개방과 협력의 지름길을 여는 계기도 가져다 줄 것으로 믿는다. 교황이 북녘땅을 찾아 대지에 입맞춤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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