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전문가 긴급진단

입력 2000-06-16 15:01:00

◈후속조치의 방향-한완상 전 통일원장관

새 천년 6월 14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의 날이다. 반세기 넘게 서로를 악마시하고 주적으로 증오해왔던 남북의 정상들이 남북공동선언문에 합의하고 서명했다. 한마디로 이 쾌거를 감개무량과 만시지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엄청난 합의사항이 과연 신속하고 효과있게 추진될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먼저 합의내용에 대해 몇가지 신중한 소견을 말해본다. 원래 의제에 들어가 있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문제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은 국제적인 맥락에서 풀 수밖에 없는 문제요, 또한 군사적인 문제여서 일단 비껴가기로 한 듯 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당사자 원칙에 입각하여 두 정상이 반세기 이상 조국땅에 깊이 뿌리내린 냉전구조와 냉전 불신을 자주적으로 해소하려는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통일에 대한 비전을 뚜렷하게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민족자주의 원칙과 통일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분단체제가 지난날 민족구성원에게 입혔던 엄청난 인간고통을 구체적으로 덜어주려는 정상들의 뜻이 또한 뚜렷하게 담겨있다. 그렇다고 민족과 인간의 고통을 해소하는 것으로 남북관계가 저절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지난 28년간 휴지처럼 취급되면서 남북간의 냉전대결이 더욱 추악해졌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이같은 나의 염려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더욱이 남북기본합의서가 서명된 지 9년 가깝지만 아직도 그것이 공염불처럼 여겨지는것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이번 6·15 선언 합의도 결코 지난 날의 문건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7·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가 실천되지 못했던 것은 외세의 부당한 간섭 때문이라고 하기보다 양 체제안에 깊이 뿌리내린 반민족적 냉전수구세력이 권력중심부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같은 냉전권력을 양정상들이 관리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라건데 6·15의 역사적 합의문이 역사속에 그 빛을 발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각기 이같은 소중한 합의를 휴지조각처럼 변질시키고 싶은 충동을 끊임없이 느끼고있는 세력을 강력하게 그리고 민주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같은 관점에서, 앞으로 시민운동의 과녁이 좀더 선명하게 다듬어져야 한다고 믿고 그 과녁을 향하여 효율적으로 시민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반민주적 개혁 중심부 또는 그 바닥에는 냉전세력이 버티고 있다. 이 냉전세력은 때로는 개혁을, 그리고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척하고, 때로는 평화를 강조하는 척하지만 그 속셈은 권위주의적 정치와 냉전적 흡수통일을 선호한다. 비록 IMF 위기를 거치면서 흡수통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지만 그것을 선호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들의 반개혁적, 반평화적 움직임을 지난 정권들은 민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관리해 내지 못했다. 지난 문민정부조차 이들을 전혀 다스리지 못했다.국내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은 동전의 양면임을 권력 주체는 깨닫지 못했다.

6·15공동성언은 그전의 남북간 공동성명들과 달리, 정상이 직접 서명한 것이다. 그러기에 두 정상은 주도적으로 이 합의를 반드시 실천해 내야 한다. 실천해 내기위해 무엇보다 대내 평화와 개혁 지향세력의 지원을 확고하게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주변의 나라들로부터 또한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이같은 성공적 후속조처가 합의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7·4공동성명서나 남북기본합의서는 실천을 위한 후속 조치가 없었기에 실패했던 것이다.

◈국제 정치무대 파장-한승주 전 외무장관

한국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기간중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열렬한 환대에 매우 놀라면서도 이를 반기고 있다.

그들은 또 김위원장의 이같은 따뜻한 제스처와 파격적인 태도의 배경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향후 남북관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해 궁금해 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은 한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즉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직접적인 대화라인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같은 남북관계의 커다란 전환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관계에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는 것은 자국의 이해와 맞아 떨어진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정착되는 것을 원하고 있으며 자국이 개입될 수도 있는 어떤 분쟁도 피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북한의 붕괴를 방지하는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남북관계개선과 이에 따른 북한의 경제사정 호전은 북한체제의 붕괴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중국이 북한에 대규모 지원을 제공할 필요성을 제기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에게는 한반도 상황의 급격한 변화가 '복잡다기한 축복(mixed blessing)'으로 간주될 수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고 북한의 급격한 붕괴를 방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중국과 여러 면에서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또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인해 동북아에서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나아가 이같은 대량살상 무기가 전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따라서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분산시킬 가능성에 대해 우려할 것이다.

또 북한이 (남한이라는) 다른 경제 원조 및 지원국을 발견함에 따라 미국은 그동안 (대북경제지원을 조건으로) 북한과의 협상에서 누려온 지렛대를 상실할 수도있게 됐다.

아울러 그동안 상존해 온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과거 미국이 누려온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이 이번 남북관계 개선으로 인해 약화될 수도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최근 수년간 러시아의 주 관심사는 한반도 문제에서 자국이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94년 러시아는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 자국이 포함되는 국제회의를 제안한바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는 자국과 일본을 배제한 한반도 문제 관련 4자회담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웃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목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한반도에 평화 및 안정을 견지하고 현상유지 정책을 고수하며 한국을 중국과 일본의 완충지대로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은 중국이 한반도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에 큰 우려를 나타낼 것이다.지금까지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매우 제한적으로 개입했으며 그중 대표적 사례가 한반도에너지 개발기구(KEDO)에 대한 일본의 참여다.

이번 역사적 남북정상 회담으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새로운 전면적 게임이 진행중이며 그 과정에서 각국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있어 각자의 역할을 차지하려 노력할 것이다.

◈남북관계 향후 전망-곽태환 통일연구원장

남북정상회담은 실질적인 효과와 그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상징적인 성과를 가진다. 분단 반세기가 넘는 동족간의 반목과 대결의 역사속에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대화하는 자체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만남은 남북화해와 상호신뢰·협력, 평화공존, 공동번영의 길로 나갈 수 있는 기틀을 우선 마련한 것이다.

두번째 성과는 남북한 직항로가 개통됨으로써 육로와 해로에 이은 '하늘길'이 처음 열렸다는 사실이다.

남북한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상공에서 상호 관제통제를 교대함으로써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구-평양 관제소의 직접 통제가 이루어 졌다.

또 두 정상은 그동안의 반목과 대결의 구도에서 벗어나 남북 화해협력의 추진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으로써 향후 전개될 남북관계 정상화의 전기를 마련했으며 한반도 평화 및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위한 출발점이 되는 민족사·세계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북 사이에 산적해 있는 현안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한다기 보다는 남북경협을 축으로 화해와 협력을 단계적으로 넓혀 나가는 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제적 이미지 제고도 빠질 수 없는 결과다정상회담이 앞으로 가져올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물 또한 크다.

남북 정상간에 합의 서명한 남북공동선언문 5개항의 의미는 50년 냉전과 분단체제를 끊어버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첫번째 항인 72년 7·4남북 공동성명의 정신을 근거로한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은 남한 당사자간 직접 해결 원칙과 북한의 자주·민족대단결원칙이 절충되어 나타난 의미가 있으며 주한미군에 대한 언급 없이 합의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한 것은 통일의 향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양측이 공통된 통일의 지향성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띠며 궁극적으로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통일과 평화공존의 기틀을 실질적으로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50년 동안 이질화된 남·북의 정서를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를 만들 것이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인 부분으로서 방문단 교환 날짜가 '8·15 즈음'으로 명기됨으로써 이산가족의 한을 상징적으로나마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단초 역할을 제공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 활성화는 민간차원의 교류를 정부 차원으로 공식화, 합법화시킬 가능성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 당국의 대화 개최는 두 정상간의 합의사항의 실천의지를 직접 합의한 것으로 남북화해와 상호신뢰·협력, 전쟁재발방지 등 현실에 바탕을 둔 통일 문제 협의가 가능토록 재확인 하는 의미가 있다.

(이글은 사단법인 경북새천년포럼(이사장 류창우)이 16일 오후 그랜드호텔에서 가진 '남북정상회담과 향후관계의 전망' 학술 토론회에서 곽태환 통일연구원장이 발표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정리=李宰協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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