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김정일위원장

입력 2000-06-14 15:02:00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거침이 없었다. 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 일행을 초대한 주인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격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김 위원장은 특히 김대통령 일행에게 격의없이 친숙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했다.

남측을 비롯한 외부에 김 위원장은 그동안 언행이나 목소리 등이 베일에 가려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으나 곁에서 바라본 김 위원장은 극히 정상적인 수반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다소 괄괄하면서도 정확했으며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치밀한 준비를 한 때문인지 사안의 본질과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동안 준비접촉과정에서 북한측은 보도진들의 방북에 대해 다소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 위원장은 보도진앞에서도 전혀 스스럼없이 행동함으로써 자신감을 보여주려는 흔적이 엿보였다.

김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13일 오전 김 위원장은 아무런 예고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중앙 카펫 통로를 통해 김 대통령 특별기로 향할 때 환영나온 시민들은 공항이 떠나갈 듯이 '김정일 결사옹위'를 외쳐 북한내 지지를 짐작케했다.또 김 위원장이 서있는 카펫 주변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측의 다른 지도부가 근접을 하지 않아 그의 위상을 감지할 수 있었다.

비교적 건강하고 젊은 모습의 김 위원장은 남측 기자나 수행원들이 접근해도 전혀 꺼리는 기색이 없었으며, 주위의 시선이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담대히 행동하는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모습은 김 대통령과 공식수행원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현관에서 김 대통령 내외와 기념촬영을 마친 뒤 김 위원장은 남측 공식수행원들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접견실에 들어가서도 직접 김 대통령을 수행한 장관들을 지명하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박재규 통일부 장관에게는 'TV에서 많이 봐서 잘 알고 있다'고 친숙감을 표시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

또 김 대통령과의 상봉을 겸한 1차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김 대통령이 왜 평양을 오려하고 김 위원장은 왜 받아들였는가 의문부호가 있는 것 아닌가' '격식없는 대화를 하자'며 남측이나 세계언론이 주목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냈다.

또한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이 몸이 불편한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남측 수행원들에게 '모든 것이 잘돼있다. 걱정없이 잘 편안하게 지내시고 사업을 하자'며 혹시 있을지도 모를 우려를 깨끗이 씻어주기 위해 배려하기도 했다.

특히 비록 체제가 다르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김 대통령이 방문한 만큼 '조선민족의 동방예의지국의 예를 다 갖춰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시겠다'며 깍듯이 예우하는 표정은 인상적이었다.

김 위원장의 자신감은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먼저 이뤄졌다는 점에서 찾을수도 있지만 '나도 통치를 하고 있지만 더 젊다'는 언급처럼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됐다.

이같은 자신감은 김 위원장이 측근들을 부를 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을 부를 때는 '용순비서'라고 호칭했고 김용순 위원장은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모습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 내부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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