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상회담 왜 연기했나

입력 2000-06-12 16:45:00

북한측의 긴급한 요청에 의해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일정(12~14일)이 하루씩 연기(13~15일)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측은 지난 10일 밤 늦은 시각 이례적으로 '기술적인 준비관계'란 이유만 단 긴급전통문을 판문점 연락관이 아닌 현재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머물고 있는 선발대 손인교 단장에게 직접 보냈고 정부당국자들은 처음에는 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정상회담이 취소되었던 악몽을 떠올리며 당황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의 방북을 불과 30시간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었다.

박준영 청와대대변인은 '기술적인 준비관계'와 관련, 겉으로는 "순수한 행사준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방북을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했다. 실제로 TV생중계, 사진전송문제 등 세부항목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대목도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이목을 모으고 있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준비행사 문제로 하루 연기되었다는 추측은 별로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역시 유력한 설은 안전문제 때문이다. 북한측이 최근 우리 언론의 방북일정과 장소 등에 대한 보도에 강하게 항의해 온 점에 비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김 대통령은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위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측이 일정을 재조정하고 안전문제를 재점검했을 수 있다는 짐작이다.

김 국방위원장의 동선(動線)은 북한 지도층사회 내에서도 극비중의 극비다. 정부의 한 인사는 "북측은 자기들 행사를 2, 3일 후에 공개하는 게 관례"라면서 이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다른 분석은 북한측이 하루 연기를 통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 남한측의 진을 빼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시각에 대해 '극단적이며 음모론적인 시각'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일정의 순연일 뿐이지 질적인 변화는 없을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결국 북한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왜 하루를 연기했는 지는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북한측의 연기요청을 선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선발대가 보고해 온 내용을 보면 북한이 얼마나 성의껏 김 대통령을 맞이하려는 지를 알 수 있다"면서 "그야말로 더 나은 준비를 위해 연기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박 대변인은 "그동안 우리 언론에게 일정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언론이 너무 협조해 주지 않더라"면서 안전문제도 영향을 주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 대통령도 이를 보고받고 "55년을 기다렸는데 하루를 더 기다리지 못하겠느냐"며 담담한 마음으로 대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憲泰기자 leeht @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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