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사람이 희망이다

입력 2000-06-07 14:40:00

노동 운동권 출신의 시인 박노해는 오랜 감방생활에서 출소한 후 "사람이 희망이다"고 노래했다. 그는 그래도 인간미에 대한 끈질긴 애정을 표시하며 인간성에 대한 전도사로 변신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 그가 '5.18 광주항쟁' 20주년 기념식 전야에 광주에서 벌어진 '술판' 사건으로 본인 스스로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집을 남기고 말았다. '술판 사건'은 국회의원 등 소위 '386세대'의 대표 주자들이 저질렀다는 점에서 도덕성을 간판으로 내세웠던 개혁 세력에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국민들에게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잠시 접어두게 만든 사건이었다.

◈인사가 망사(亡事)인 나라

그러나 싱그러운 6월의 꽃 박지은은 잠시 암담함에 빠진 국민들에게 다시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때묻지 않은 우리의 젊은 희망들은 한국의 밑바탕에 도저(到低)하게 살아 꿈틀대고 있는 저력을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주며 가슴을 환하게 해주고 있다.

박지은은 지난 5일 끝난 미 LPGA투어 캐시아일랜드 그린스닷컴 클래식대회 4라운드에서 기적의 역전승을 일구는 인간 승리를 선보였다. 박지은은 전반 9홀을 마친 후 악천후를 알리는 경고 사이렌이 내린 후 기사회생, 불가능할 것 같이 보였던 승리를 움켜쥐어 전 국민을 환호하게 했다.

그러나 박지은의 이같은 값진 승리 뒤에는 그동안의 부진을 털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마추어시절 최강자라는 겉으로의 명성을 뒤로하고 자기에게 부족한 펀더멘털(기초)을 닦기 위해 피눈물나는 고통을 감수했던 것이다.

박지은의 경우를 작금의 우리나라 국내 사정과 대비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위 'IMF 3년차 증후군'으로 대변되는 위기의 '경고 사이렌'이 도처에서 울리고 있다. 전 국가적으로 '모럴 해저드' 현상이 너무 깊숙한 병인으로 뿌리 박혀 있어 과연 치유가 제대로 가능할지 암담함마저 느끼게 한다.

동아건설 로비 사건에서 국회의원들이 돈을 받는데 도덕적으로 무신경함을 드러냈듯 나라 전체가 부정부패에 함몰돼 허우적거리는 형국이다.

◈현 위기는 구조적 문제때문

인사가 만사가 아니라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고 있는 형편이라 중국의 주룽지 총리가 개혁에 나서면서 말한 '백개의 관'의 준비만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이렇게 된 원인(遠因)은 초대 이승만 정권을 비롯, 역대 정권에서 개혁다운 개혁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데서 찾을 수 있지만 현 정권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국정운영을 제대로 수행해 왔더라면 최근의 위기적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회의 지도층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부패현상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다. 사람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운영체제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투명하고 공개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제도와 시스템 운용을 물처럼 맑게 한다면 그만큼 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개혁 리더 그룹들이 책임감과 소신을 갖고 일신의 안위와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살신성인과 멸사봉공의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의 힘 한곳에 모아야

현 경제팀의 개혁 추진 미흡을 두고 DJ가 직접 경제를 챙기겠다고 현충일 담화에서 밝혔다. 이것은 국가 경제운용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자인하는 이야기도 된다. 대통령제 하에서 나라 경제 정책이 잘못될 경우 대통령은 관리자로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문민정부때 경제팀에만 책임을 묻지 않고 당시 야당은 YS를 환란의 주범으로 몰아치지 않았던가. 엄청난 규모의 공적 자금 처리, 무역수지 적자 등 불안한 경제 환경을 극복할 국가적 힘의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민들은 사람이 희망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지은 처럼 희망을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싶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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