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시간 속에서 창조했을까, 아니면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공간과 시간의 모체를 먼저 창조해야 했을까?'
초기 기독교도들이 1천 년이 넘도록 고민하고 탐구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시간의 창조였다. 수세기에 걸쳐 열띤 논쟁이 계속된 뒤, 1215년에 열린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하느님이 "영적인 것과 유형적인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을 모두 동시에 무에서 창조했다"는 공식교리를 확립했다.
하지만 이런 순서에 입각한 명확한 서술에 익숙해져 있는 서양인들은 힌두교의 포괄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윤회의 체계를 이해하기 힘들고, 과거가 현재와 나란히 존재하는 호주 원주민들의 시간 개념에 대해서도 혼돈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시간이란 우리에게 아주 낯익으면서도 낯선 주제다. 우리 모두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누구도 그것의 흐름을 바라볼 수도 잡을 수도 없다. 시간은 늘 우리에게 모호하고 혼란스러우며 불가항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시간을 개념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인류가 시간을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고, 철학자와 시인, 과학자, 예술가들은 시간의 본질을 규명해 그 뜻을 매기려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왔다.
'시간박물관'(원제 'The Story of Time', 푸른숲 펴냄, 김석희 옮김)은 인류가 시간을 의식하기 시작한 이후 시간이 각 문화권 사람들의 의식을 어떻게 지배했는지 시간의 창조와 측정, 묘사, 체험, 종말 등으로 나눠 3백여장의 사진, 그림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와 국립해양박물관이 새 밀레니엄을 맞아 인류 문명 중에서 '시간'이라는 부분을 집대성한 책이다.
움베르토 에코, 에른스트 곰브리치를 비롯 과학과 예술, 역사, 철학, 문화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 24인의 글을 통해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세계 곳곳의 다양한 문화가 시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측정하고 표현하는지를 짚어보고 있다. 즉 인류문명이 시작된 후부터 세 번째 밀레니엄이 도래한 현재까지 전지구를 무대로 시간의 모든 요소를 여러 분야에 걸쳐 비교문화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인류가 시간을 체계화하기 위해 시도한 노력과 그 결과물인 달력, 시계의 발달사를 정리해 보기도 하고, 예술가들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지 고대 그리스·로마유적과 중세 알레고리화를 해석하는 한편 인상주의·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시간의 허무함을 묘사해온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기도 한다. 또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또 다른 유형의 시간 즉 유기체의 생명을 조절하는 생물학적 시계(심장의 박동과 노화 등)를 분석하며 민족과 종교,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다양한 인생의 통과의례 문화를 비교해낸다.
시간의 시작이라는 빗장을 연 인간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시간의 종말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지구상의 여러 문화가 시간의 종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있다. 결론은 시간의 종말을 모든 것의 종말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시간이 끝난 뒤에도 무언가는 살아남을 거라고 믿는 이 경향이야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희망을 토대로 오늘날 인류는 자신의 흔적을 후세에 전하는 방법에 골몰하고 있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유전공학적 방법을 통해 시간의 지배에 다시 도전하려하고 있다. -徐琮澈기자 kyo425@imae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