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6·25참전 용사가 아들에 의해 46년만에 망각속에 묻혀가던 화랑무공훈장을 찾았다.
1952년 8월 육군에 자진 입대, 한국전 당시 3사단 22연대 1대대 1중대 하사로 참전한 고(故) 신덕환(申德煥·청송군 진보면 이촌리)하사가 그 주인공.
고 신 하사는 당시 좥피의 고지 로 불리던 독수리고지전투(1952. 9. 28~10. 2), 금성지구 689고지 전투(1953. 4. 2~12) 등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어 53년 6월25일 금화지구 529고지(관망산) 전투. 적과의 6차례 뺏고 뺏기는 공방전이 계속됐다.
교전 6일째인 30일 저녁 폭우처럼 쏟아지는 적의 포화를 뚫고 고지 탈환을 위해 돌진하던 신 하사는 적이 쏜 총알에 좌측다리 관통상을 입고 주저앉았다.
전우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목숨을 건져 육군병원으로 후송된 신 하사는 54년 9월20일 의가사 제대했다.
당시 전투는 전우 200여명과 적군 500여명이 죽고, 신 하사를 포함 3명만이 부상을 입은 가운데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일 정도로 참혹했다.
그러나 그뿐. 조국과 겨레위해 싸운 그의 빛나는 전공은 살아 생전 한 점 영광없이 방치된 채 6·25참전 후유증으로 40여년간 고생만 하고는 지난 92년 5월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전쟁 무용담을 즐겨 들으며 아버지 삶에 늘 안타까움을 가졌던 큰아들 재영(45·상업)씨는 16년 동안 국방부 및 육군본부를 드나들며 지난달 5일 드디어 국방부에서 선친의 공을 확인, 46년전 추서됐어야 할 화랑무공훈장을 되찾게 됐다. 이틀뒤인 7일 고인의 8주년 기일을 맞아 영전 앞에 무공훈장을 바친 가족들은 회한과 기쁨이 교차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미망인 김씨는 "남편 영전에 가장 값진 선물이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재영씨는 "아버지가 훈장 수여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지역사회를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며 "50주년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형식과 부질없는 절차보다는 국가유공자들이 진정으로 예우받을 수 있는 배려가 아쉽다"고 말했다.-청송·金敬燉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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