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대합실 골프가방 행렬 줄이어

입력 2000-05-29 15:33:00

이달 초 평일 오전 대구공항 대합실. 40·50대 중년 남자 15명이 골프 가방을 화물칸에 넣기 위해 긴 행렬로 줄을 서 있었다. 여행지는 태국. 경비는 4박5일 기준으로 1인당 100만원.

이날 오후 대구공항에는 호주행 효도관광을 마친 노인 20여명이 대합실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노인들은 예외없이 양털이불 3~4채씩을 사가지고 입국했다.

지난 4월에는 지역 한 유학원이 중고교생들을 상대로 여름방학 해외 어학연수 및 여행 상품을 만들어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벌였다. 가격은 1인당 270만~300만원. 행선지는 캐나다이며 3주동안 영어공부와 함께 해외 견문을 넓힌다는 게 여행 목적이었다.

대구는 작년에 비해 올들어 30% 정도 해외여행객이 증가했다는 게 여행사들의 설명이다. 수년전부터 300만원 안팎의 고가 여행 상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여행사가 등장했고 골프여행은 몇몇 전문여행사가 성업 중이다. 골프 전문 여행사는 시간과 인원을 맞추면 동남아에서 북미, 호주까지 전세계 어디든 골프여행을 주선할 수 있다.

서민들의 생활은 외환위기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데 반해 해외 여행객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소수의 사치 여행객 때문에 다수의 합리적인 여행객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키세스 여행사 서영학 대표는 좬여행 인구의 90% 이상이 경제 규모에 맞게 합리적인 여행상품을 고르지만 소수 고소득층 해외 여행객이 무분별한 소비를 일삼아 해외 여행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하고 있다좭고 말했다.

고소득층에겐 해외 여행에 빗장이 풀린 인상이다. 재정경제부는 6월 임시국회에서 해외여행 자유화를 뼈대로 한 외환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1인당 해외 여행 경비가 1만달러, 증여성 송금 건당 5천달러, 해외 이주비 4인가족 연간 100만달러, 재외동포 부동산 매각 대금 반출 연간 100만달러 등이다.

내년부터 시행된다고 하지만 벌써 해외여행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여행 경비만 지난해 비해 36% 이상 증가했다. 경제규모와 비교한 해외 여행 경비 지출은 경제규모(GDP)에 비해 턱없이 높다. 우리나라가 1.2%인데 반해 미국 0.6%, 일본은 0.7%에 불과하다. 해외 여행객 증가로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 국내 여행객의 해외 러시는 외국인의 국내 여행을 막아 무역 역조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대구 경실련 최은영 부장은 좬국내 경기가 안정적 기조를 유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외여행 급증은 거품 경기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좭며 좬외환위기 직전인 96년 우리나라 여행 수지 적자가 56억달러로 최악이었던 것과 비슷하게 진행될 우려도 있다좭고 말했다.

全桂完기자 jkw6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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