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곽홍란-아동문학가)

입력 2000-05-29 14:15:00

이즈하라의 밤은 도시 깊숙이 들어와 찰랑이는 바다가 재워준다. 차츰 실눈을 뜨고 깨어난 검은 바다를 품고 이 글을 쓴다.

내 생애 마지막 열흘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그 가운데 며칠은 딸과 둘이서, 또 이삼일은 어머니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누구나 부모에 대한 각별한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달려가면 금방일 거리에 계셔도 마음만 보내야 하는 것이 보통 여자들의 삶이 아닐까?

꼭 지켜야 할 약속같은 것을 쉬 어겨도 딸이기 때문에 용서해 주셨고, 어머니라는 이름만으로도 위안이 되곤 했다. 그 그리운 눈빛만으로도 나를 살아있게 할 어머니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사신다. 병석에 누워 손발이 되게 한 지아비를 두어 해 전에 먼저 보내고, 그 고통을 함께 하게 해준신 것을 감사드리던 분이었다. 지금도 지아비가 거처했던 빈 방을 향해 출필곡반필면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때로는 아름다와 보이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올해 칠순을 맞으셨다. 그런데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드려야할 도리들을 모두 거부하셨다. 그제사 비오는 날 우산을 잃은 어머니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내 곁에 누워 곤한 숨을 몰아쉬며 딸에게 귀한 시간을 주고 계신다.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의 자손으로 여학생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어머니는 오늘 무척 신나보였다. 일본말을 모르는 내겐 모든 것이 눈멀고 귀멀게해 이국의 냄새가 풍겼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어머니는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일행들이 잘못쓰는 말을 고쳐주기도 했고 본토인과 술술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늘 그랬듯이 어머니를 며칠 모시고 싶었던 것은 바램일뿐 낯선 이국에서도 어머니가 나를 모시고 다녔다. 이렇듯 행복으로 가슴 저미게 하면서….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