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강원도의 힘'의 홍상수 감독 영화는 지독히 재밋살이 없다. '여관방 물맛'처럼 밋밋하다. 그러면서도 예사롭지 않아 찬찬히 뜯어보느라고 늘 머리가 아팠다.
세 번째 작품 '오! 수정'도 그의 지난(至難)함은 여전하다.
흑백에 대한 고집, 남녀의 감정 흐름에 대한 천착, 반복을 통한 의식의 되새김질…. 그러나 냉소로 점철된 전작들과 달리 훨씬 유머가 늘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오! 수정'은 남녀가 만나 살을 섞게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는 PD 영수(문성근)와 일하는 구성작가 수정(이은주)이 화랑에서 영수 후배 재훈(정보석)을 만난다. 재훈은 30대 중반의 부잣집 아들이지만 순진하고 착한 남자. 함께 술을 마신 어느 날, 첫 키스를 시작으로 둘은 연애를 시작한다. 재훈의 정성어린 구애로 수정은 점차 마음을 열고 마침내 둘은 하나가 된다영화는 여관방에서 벌어지는 수정의 첫 경험, 절정에서 재훈이 내 뱉는 "오! 수정"이라는 대사로 모든 것이 밝혀지는 단순한 줄거리지만 오 감독은 특유의 스타일로 짜깁고, 반복하고, 재구성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제목을 넣어 모두 5개의 단락으로 나눴다. 수정 재훈 영수의 서로 다른 기억의 편차를 비교한 2부 '어쩌면 우연'과 4부 '어쩌면 의도'가 큰 줄기. 여관방에서 수정을 기다리는 재훈으로 시작하는 1부 '하루종일 기다리다'와 여관에 가기 전 수정의 발길을 따라간 '공중에 매달린 케이블카', 첫 경험의 순간을 그린 5부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 곁가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오! 수정'은 어리숙한 캐릭터 재훈으로 인해 과거의 영화들보다 씹는 맛이 훨씬 덜하다. 수정의 몸을 애무하다 무심결에 다른 여자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나, 여관방 욕실에서 시트에 묻은 수정의 처녀 흔적을 지우는 모습은 홍상수영화에서 못 보던 다정다감함이다.
독특한 구성, 절제의 미덕, 흑백의 질감, 극사실성을 강조한 카메라웍 등 '오! 수정'은 한국영화에서 그리 쉽게 볼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관객의 스크린 몰입을 막기 위한 소격(疏隔·거리감을 두려는 연출기법)효과는 지나친 작가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비쳐진다. 특히 수정의 순수성에 의문을 던지기 위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오빠를 수음해주는 장면은 오버액션이다.
"정보석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라는 홍감독의 얘기대로, '오! 수정'은 정보석의 연기가 볼만한 작품이다. 튀지 않으려는 이은주의 절제 연기도 매력적이다. 126분. 18세 관람가. (27일 아카데미극장 개봉) 金重基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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