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교실 '학급 홈페이지'

입력 2000-05-27 14:15:00

'다시 형곡 중학교 학생이 되고 싶다. 남고에 진학하니 남자 냄새 때문에 질식할 것 같아''어제는 허벅지 2대, 오늘은 종아리 3대 맞았다. 흑흑 안 맞은 데가 없다. 최성현 선생님보다 더 세게 때린다. 너희들이 내 종아리의 고통을 알겠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속담은 이제 반쯤은 틀린 말이 돼 버렸다.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한 동창생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다 그날의 일상을 마치 눈앞에서 넋두리 늘어놓듯 풀어내며 정(情)을 엮고 있다.

올해 구미 형곡 중학교를 졸업한 이효조 군이 만든 학급 홈페이지에는 하루에도 수십건 씩 사연이 올라온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 중학교 시절보다 성적이 많이 올랐다거나 떨어졌다는 소식, 야간 보충 수업을 받느라 연일 파김치가 되기 일쑤라는 이야기까지 장르가 따로 없다. 가끔씩 중학교 시절 뒤집어 써야했던 누명을 벗어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도 엿보인다. 스승의 날 찾아뵙지 못한 제자를 용서해달라는 탄원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없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지금은 현장 실습을 나간 조일 공고 전자과 3학년 찬식이는 담임 선생님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다. 감히 눈앞에서는 낯부끄러워 입 밖에 내기 힘든 인사였다. 학급 홈페이지에는 수학여행때 폼잡고 찍은 사진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의 사진까지 올려놓았다. 세월이 지나도 자신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학창시절 괴팍한 별명도 써놓았고 미래의 포부까지 거창하게 밝혔다.

아직 코흘리개들인 죽전초등학교 1학년 1반 홈페이지는 꽤 쓸만한 학습장이다. 최이윤 담임 선생님이 만든 이 학급 홈페이에는 8칸 원고지가 있어 글쓰기 연습에 큰 도움을 준다. 오늘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또 한번 강조해 놓았다. 내일의 준비물, 과제물, 학급 수업시간표까지 저학년 어린이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올려 놓았다. 아이가 준비물을 잊어버리더라도 부모들이 챙길 수 있다. 학부형들이 아이의 짝꿍에게 보내는 사연도 올라와 있다.

이처럼 학급 홈페이지는 늦은 밤에도 찾을 수 있는 교실이 되고 얼굴을 맞대고 내뱉기 힘든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용기가 되어 준다. 또 세월따라 어슴푸레 멀어지는 추억을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도록 해준다. 이제 우리도 어설픈 실력을 모아 학급 홈페이지 하나쯤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어설프지만 직접 만들어도 좋고 어렵다면 무료로 학급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사이트(www.edu4i.com)에 의뢰해보는 것도 좋겠다.-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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