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보호감호소 서예지도 권영록씨

입력 2000-05-13 15:09:00

12일 오전 10시30분쯤 청송군 청송 제2 보호감호소 교무과 사무실.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황색 수의(囚衣)를 입은 제자 10여명과 서예가 권영록(49) 선생이 참가한 가운데 이색적인 '스승감사행사'가 열렸다.

재소자 제자들이 푼푼히 모은 노임으로 마련한 조촐한 다과상앞에서 제자 양모(46)씨는"한획 한획 붓놀림을 할 때마다 구도자의 심정으로 돌아갔다"며 선생님을 껴안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어 다른 제자들의 굵은 눈물이 뿌려졌고 사무실은 이내 눈물바다를 이뤘다.

"나를 버리는 마음으로 재소자를 지도하다 보니 오늘처럼 이렇게 고귀한 다과상을 받는군요"지난 82년 3월부터 18년간 청송감호소에서 재소자를 상대로 서예지도와 정신훈화를 해온 권선생.

18년간의 묵향교화(默香矯化)세월은 권선생에게 지지리도 못난 가난을 안겨줬다. 출소한 제자들의 생계와 재기를 돕느라 지금까지 모은 재산이 고작 전세금 3천만원뿐이다.

그러나 권선생의 마음은 어느 부자보다도 풍족하다. 권선생의 지도를 받은 재소자가 대한민국 서예대전 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54명이 각종 서예대회에서 수상을 했다. 무엇보다 권선생을 기쁘게 하는 것은 청송보호소 출소자 재범률이 70%에 이르는데도 권씨 제자 300여명은 99% 새 삶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

수년전 권선생은 출소한 제자에게 사업자금으로 1천700여만원을 아무런 조건없이 건네줬다. 이후 사업을 하다 부도를 내고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된 제자를 위해 권선생은 추가로 1천여만원을 들여 수표회수를 돕고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권선생의 노력도 허사로 돌아가 그는 안양교도소에서 복역중 지병으로 숨졌다. 권선생은 허공에 날린 2천700여만원을 저승가는 제자에게 보태준 노자로 생각했다. 또 제자 이모(52)씨가 뛰어난 서예소질을 발휘하자 재심을 청구, 여섯번이나 서울에 올라가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서 감형을 호소해 은전이 베풀어지게 했다.

"어두운 과거를 지닌 제자들이 밝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제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오늘도 권선생은 감호소 창살의 장벽을 넘어 재소자들의 가슴에 참사랑을 심어주기위해 길을 나선다.

청송 金敬燉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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