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로 기억된다. 지리산 한 쪽 자락 선돌마을에 있는 실상사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곧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 탓인지 일주문 밖에 걸려 있는 노란색 현수막이 유난히 눈에 띄였다. 정겨운 필기체로 쓰여 있는 글자들을 확인하는 순간 잔잔한 감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현수막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합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얘기긴 하지만 수년 전 명동성당 건립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의 하나로 성당 측에서 법정스님을 모시고 강설을 청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스님은 성 프란치스코의 일화나 어록을 간간이 인용하시면서 강설을 하셨는데 머릿말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저같은 사람을 이런 자리에 서게 해주신 천주님의 뜻에 감사드립니다"청중들의 큰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음은 물론이고,이날 강설에 대한 답례로 김수환 추기경께서 서울 길상사 개원 법회때 축사를 하셨다는 후일담이다.
엊그제는 불기 2544년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남기신 가장 큰 깨달음은 연기법(緣起法) 즉 존재의 관계성이 아닌가 여겨진다. 너와 나,정신과 물질,인간과 자연,시간과 공간 등 크고 작은 모든 존재물은 서로 의지하여 생성 변화하는 것이며,이러한 상의성(相依性)이 무너지면 그 관계도 저절로 소멸된다는 것이 연기법의 핵심적인 논리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리만큼 단순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연기법을 체득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뭇생명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런 노력이 전제될 때 연기적 삶의 실현,다시 말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개별적 존귀성을 인정하고 스스로도 자기 몫을 온전히 행함으로써 전체적인 질서와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삶이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다.
지역, 계층, 종교간 갈등이 날로 심화돼 가는 요즈음 이런 연기론적 삶을 통해 화해와 용서, 그리고 하나됨의 기쁨을 우리 모두가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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