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재 부근 시체 수두룩

입력 2000-04-22 00:00:00

한국전쟁 초기 한국 군경이 경북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 덕천마을 등에서 좌익 정치범 2천여명을 재판없이 처형하는 장면을 미군 장교들이 목격한 사실이 비밀 해제된 미군 문서에 의해 밝혀졌다는 AP통신 보도에 대해 현지 주민들의 목격 및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향토사가 및 학자들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 정부가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면서 남한내 좌익주의자들이 북한군과 협력하는 것을 막기위해 상당수 좌익들을 비밀리에 처형한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있다.

지천면 영오리 속칭 먹골 마을 배인수(84)씨는 "날짜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없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해 지천 신동재 정상 부근 속칭 법전골에 나무하러 갔다가 골짜기 속에 미리 파둔 구덩이에서 헌병 복장의 우리 군인 2명이 민간인 6명을 소총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포박된 사람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수개월 동안 신동재를 오르내렸고 연이어 총성이 울린 점으로 미뤄 모두 처형된 것으로 짐작되며 간혹 나무하러 신동재에 갔다가 총에 맞아 죽은 시체들을 부지기수로 봤다"고 했다. 또 "사살된 사람들은 당시 우리 정부가 좌익들을 관리 및 교화시키기 위해 만든 보도 연맹의 회원들인 것으로 안다"고 덧 붙였다.

같은 마을 배주현(75), 류충열(65)씨는 "이 무렵 신동재에선 연일 총소리가 들렸고, 한번은 총상을 입고 도주하던 한 사람이 6km 가량 떨어진 지천역 부근에서 군인들에게 다시 잡혀 총살됐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또 당시 경찰로 재직했던 지천면 연호리 차수진(85)씨는 "46년 미군정 기간중 대구지역의 10월 인민항쟁을 비롯 전국적으로 좌익들의 항쟁이 잇따르면서 정부가 이들을 관리.교화하기 위해 보도 연맹을 만들어 검.경이 관리했다"고 했다.

지천면 신리 이수일(77.전 칠곡문화원장)씨는 "당시 보도 연맹에 등록된 좌익들은 전국 읍.면별로 적게는 2~3명, 많게는 10명 이상이었는데 한국전쟁 직후 좌익들의 후방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군경이 비밀리에 학살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칠곡.李昌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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