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학교 통폐합-(중) 버려진 학교

입력 2000-04-21 00:00:00

농어촌에서 학교는 교육기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주민들에게는 마을회관이 되기도 하고, 체육대회나 마을잔치의 공간이 된다. 고향을 찾는 도시인들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고향을 잊지 않게 해 주는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한다.

농어촌 주민들이 학교 통폐합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저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를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청도군 매전면에서는 중남초등이 올해 폐교됨에 따라 30년 동안 계속돼온 인근 내리, 지전, 송원, 구촌리 등 6개 마을 주민 체육대회 전통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주민 화합을 다지는 마당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출향인사들이 고향을 찾을 명분도 잃어버린 것이다.

내년에 통폐합될 예정인 문경 가은초등 문양분교 출신 조모(45·서울 모회사 대표)씨는 "매년 운동회 때 내려와 교정에서 함께 즐기고 교사와 아동들을 서울로 초청하며 모교에 애정을 쏟아왔는데···"라며 아쉬워했다.

폐교된 지역 주민들도 "학교는 어린시절 꿈의 동산으로 마을단위 축구대회, 동창회 등 각종 행사를 가지는 친목의 장으로 이용됐으나 지금은 고추, 참깨 등을 재배하는 농경지로 탈바꿈돼 지역 정서마저 메말라 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폐교 활용 문제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북도 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486개의 폐교 가운데 매각 또는 매각 계획이 103개, 대부계획 45개, 자체활용 계획 9개이고 나머지는 자체활용중이하거나 유·무상 임대됐다.

이 가운데 주민들이 만족할 정도로 활용되는 곳은 학생 야영장이나 청소년 수련장, 농민 교육장 등 극히 일부. 창고나 야적장, 경작지, 직업훈련원, 공장 등이 들어선 곳이 대부분이다.

학교 설립 당시 주민들이 기탁한 땅이 대부분인 일부 지역에서는 "아무리 폐교됐다고 해도 공장이나 야적장을 세우는 것은 땅을 내놓은 지역민들의 참뜻을 외면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95년 폐교된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초등 남송분교는 대표적인 사례. 이 마을 이장 장덕환(45)씨는 "교육청이 땅을 기탁한 주민 동의도 없이 개인에게 폐교를 매각한 것은 잘못"이라며 "주민들을 위한 복지공간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폐교 후 장기간 활용되지 않는 일부 폐교는 청소년들의 심야 탈선 장소가 되거나 동네의 미관을 망치는 흉물로 변하고 있어 최소한의 보전 대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이에 반해 폐교가 농촌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관계당국의 깊은 관심이 요구된다. 청송군 청송읍 월외초교는 이 학교 출신 부부가 귀농, 허브농원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으며 부동면 하의리 주왕산초등의 경우 대한검도회 이사 김종수씨가 임대, 지역 주민과 중고생들에게 무료로 검도를 가르치고 있다.

군위군 군위읍 금구리 남부초교는 선진형 이동식 교육원인 '군위 학생종합 체험학습원'으로 변모했다. 학생들은 골프와 포켓볼을 치고, 국악과 가사를 배우며 향토자료와 민속자료도 보고 배울 수 있다. 주민들은 "교육청이 주민들과 의견을 나눈 뒤 현장학습원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니 폐교로 인한 허전함이 사라졌다"며 긍정적인 반응이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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