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 와서 중·고등학생들의 가두행렬이 매일의 다반사처럼 되어 있다. 방학 동안의 훈련을 겸한 모종행렬만이 아니라 최근 대구시내의 예로서는 현관(顯官)의 출영까지 학생들을 이용하고 도열을 지어 삼·사시간동안 귀중한 공부시간을 허비시키고…특히 우리가 괴이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학교당사자들의 회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관청의 지시에 의하여 갑자기 행해졌다는 것을 들을 때 고급행정관리들의 상부교제를 위한 도구로 학생들을 이용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1955년 9월13일자 매일신문에 '학생을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이 게재되자 다음날인 14일 낮 깡패 수십여명이 신문사로 난입, 폭력을 휘두르고 기물을 부수는 테러행위를 자행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백주의 테러'사건으로 사설을 쓴 최석채 주필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몽향(夢鄕) 최석채선생은 평생을 언론인으로 살면서 어떠한 타협도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정신으로 일관, 한국 언론사의 전설로 승화한 인물이다.
25세이던 1942년 잡지 기자로 언론에 입문한 뒤 매일신문 편집국장, 주필을 비롯, 조선일보 논설위원, 경향신문 편집국장, MBC회장, 매일신문 명예회장 등을 역염했으며 81년부터 87년까지 매일신문에 '몽향 칼럼'을 연재,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학생을 이용말라'를 비롯, 4·19의거를 촉발시킨 '국민이여 총궐기하자' 등 그가 쓴 사설은 격문에 가까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힘찬 글이어서 읽는 이들의 피를 끓게 했다. 그는 "글이란 둥글둥글하지 않고 모나게 대패질해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하는 등 정론직필에 대한 신념을 강조했다.
그는 권력뿐만 아니라 5·16직후 혁신계의 서울시내 횃불시위를 '난동데모'라는 제목으로 비판했는가 하면 군부의 5·16 지지연설 방송 요청을 거절, 권력의 '기피 인물'로 낙인찍혔다.
이후 그를 회유하기 위해 장관직 제의 등이 잇따랐으나 이를 뿌리치고 끝까지 '언론인'으로 남아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金知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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